돈으로 산 평화
돈으로 산 평화
  • 승인 2018.07.27 14:4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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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우
주필 겸 편집국장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4일 “남북의 화해와 항구적인 평화는 여야,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닌 우리 온 국민, 크게는 인류의 공통과제로 이 길을 열어가는데 모든 국민들이 뜻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당연한 말이다. 누구나 평화를 갈망한다. 하지만 전쟁은 수 없이 일어났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송(宋)나라는 중국문화의 황금기로 불린다. 1천년 전 그곳은 세상에서 제일 크고 신나는 곳이었다. 독창성과 창의성은 유럽의 르네상스를 능가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개화된 사회를 만들었지만 국방을 게을리 했던 송은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중국인들은 지금도 송대를 그리워하며 상하이 중국예술관에 ‘카이펑:황금기로의 여행’을 재연해놓고 있다. 중국의 4대 발명품 중 종이를 제외한 인쇄술, 화약, 나침판이 바로 송나라 때 발명품이다. 송은 르네상스보다 4백년이나 앞섰지만 교육과 과학, 주거문화, 음식, 통치 모든 면에서 서양을 훨씬 능가하는 문명국가였다.

송왕조가 위대한 것은 지금도 중요한 정치화두인 ‘시민가치’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송대에는 글을 읽고 쓸줄 아는 능력이 보편적이었다. 교육을 위해서는 많은 책이 필요했고, 그 결과 인쇄술이 발달했다. 인쇄술이 발달하자 출판이 왕성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평민 남녀를 위한 자기계발서도 있었다. 노년의 삶에 관한 책도 출판됐다. 진직(陳直)이 1085년에 저술한 수친양로신서(壽親養老新書)다. 이 책은 중국의 왕조마다 새 판이 나왔고 지금까지도 출판되고 있다. ‘노인들이 더 잘 살고 더 오래 살며 성취감을 느끼게 돕는 방법’ 등이 주요 내용이다. 요즘같은 고령사회에나 나올 법한 책이다. 진종(998~1022년)때 발명된 화약은 ‘포항불꽃축제’같은 불꽃놀이용으로도 사용됐다. 활발했던 무역을 위해서는 배 만드는 기술과 항해술이 필요했다. 그래서 발명된 것이 나침판이다.

송은 황하 평원 한가운데인 벽지 카이펑( 開封)에 계획도시를 건설했다. 송의 수도다. 유명한 판관 포청천이 그곳 부윤이었다. 당시 카이펑의 인구는 1백만명.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백성들의 번영과 행복에 집중한 도시였다. 각종 상점과 음식점들이 있었고, 패스트푸드가 있었다는 문헌도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전 시대와 달리 통행금지령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카이펑에서는 모두가 야시장으로 가서 놀 수가 있었다. 도시생활의 즐거움이 이때 시작됐다. 19세기까지 지구상의 어떤 도시보다도 컸던 도시였다. 궁정화가가 1120년경에 그린‘강위의 축제’. 길이 6m의 두루마리인 이 그림은 당시 생활상을 낱낱이 보여준다. 특권계층이 아닌 다수를 위한 도시였다.

송대의 유산 중에 여전히 전세계에서 각광 받는 것은 중국요리다. 요즘 먹방이 인기있는 것처럼 그때도 잘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세계 최초의 훌륭한 음식점 문화가 생겨났다. 수천권의 요리책도 나왔다. 그 중 한권은 아직도 계속 재판되고 있다. 바로 산가청공(山家淸供)이다. 요즘도 먹기 힘든 고급요리법이 즐비하다. 게살을 채운 오렌지, 히비스커스 꽃을 넣고 찐 두부. 저자는 요리법마다 어디에서 배웠는지와 소감을 기록해놨다. 이름도 생소한 ‘매실 국수 케이크 수프’. ‘이 요리법은 지마우산의 나이 많은 학자에게서 배웠다. 눈이 내리던 아름다운 밤이었는데…그래서 이것만 먹으면 그 강렬했던 순간이 물밀 듯 밀려온다.’

이렇듯 화려했던 문화는 여진족이 세운 신생국가 금(金)나라의 침략으로 한순간에 무너졌다. 1127년 정강(靖康)의 변(變)이다. 중국인들은 역사상 가장 가슴 아픈 치욕스런 전쟁으로 기억하고 있다. 여진족의 공격으로 카이펑은 불타고 겁에 질린 수만명의 백성들이 희망없이 저항을 계속했다. 식량은 바닥났고, 시장은 텅비었다. 당시 사람들이 인육을 먹었다는 얘기도 있다.

문제는 중요한 시기에 국가의 자원을 낭비한 것이었다. 여론은 국방에 쓰기를 원했으나 1101년 제위에 오른 휘종은 웅장한 건축프로젝트와 예술에 예산을 낭비했다. 휘종은 선대의 황제들처럼 침략자들을 돈으로 매수했다. 문치주의를 채택했던 송은 건국초기부터 요(遼)·서하(西夏)·몽골 등 국경을 접한 나라에 땅과 돈,비단을 주고 평화를 구걸했다.

문제는 땅과 금을 주니 더 달라고 했다. 금나라는 황궁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악기와 악사 그리고 장인들을 원했다. 이들이 특히 원했던 것은 여성이었다. 궁녀들은 물론 황실과 명문가의 아내와 딸들을 원했다. 대상이 된 여성들 대부분은 자결했다. 결국 휘종과 그의 아들 흠종과 황족, 수천명의 관리들이 금나라 포로로 잡혀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물론 금군들은 약탈한 재물들을 가득싣고 북방으로 돌아갔다. 북송(北宋 )은 그렇게 멸망했다.

남북 화해분위기 탓인가. 지휘체계가 엄격한 군에서 하극상이 일상화되면 나라가 위태롭다. 군령은 서지않고 지휘부는 마비된다. 판문점선언에 따라 최전방 병력과 장비를 시범철수한다고 한다. 상대는 여전히 핵은 고유한 유산이라고 얘기한다. 병력기간을 단축하고 장군과 병력도 줄인다고 한다. 당시 최고의 문명을 자랑했던 카이펑은 순식간에 전멸했다. 화해도 좋고 평화도 좋지만 국방을 소홀해서는 안된다. 역사의 웅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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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2018-08-10 18:20:17
평화를 원화면 힘을 길러야죠~

경주인 2018-08-11 08:38:52
멋진 칼럼입니다. 주필님의 다음 칼럼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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