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지붕과 둥근 초승달…이방인 사로잡은 오묘한 조화
삼각지붕과 둥근 초승달…이방인 사로잡은 오묘한 조화
  • 박윤수
  • 승인 2018.08.0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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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코람 하이웨이 이슬라마바드 내 파이잘모스크돔 구조 탈피…무슬림 비난받아기둥없는 홀, 최대 10만 명 수용다르마라지카 사원서 스투파 관람그리스 신과 흡사한 부처상 '눈길'아보타바드서 하이웨이 탐방 시작
파이잘모스크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파이잘 모스크. 사우디아라비아 파이잘 국왕의 기부로 지어진, 파키스탄에서 가장 큰 모스크이다.
 
 

 

 

박윤수의 길따라 세계로-카라코람 하이웨이 <2>

파키스탄의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의 80년대의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 새롭게 꿈틀대는 도시의 기운을 느낀다고나 할까?

도심에 진입하면서 파이잘모스크로 향했다. 파이잘모스크는 마르갈라 산 아래 5천㎡ 규모의 건물이다. 메인홀에 1만명, 주랑현관에 4만명, 뜰에 5만명 등 모두 10만명의 예배자들을 수용할 수 있으며, 인접한 땅까지 포함하면 30만명까지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다. 1986년 완공 당시 세계 최대의 모스크에 등극했으나, 1993년 모로코 카사블랑카에 하산2세 모스크가 완공되면서 밀려났다.

파키스탄은 계획도시 이슬라마바드를 건설해 1966년 수도를 옮겼다. 그해 파키스탄을 공식방문한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잘 국왕이 이슬라마바드에 국립 모스크를 건설할 것을 제안했고, 사우디 정부는 그후 건설비용 130만 사우디 리얄(약 120만 달러)를 기부했다.

1969년 설계공모를 통해 17개국 42개 디자인 중에서 터키 건축가 베닷 달로카이의 작품이 선정됐으며, 1976년 착공해 1986년 준공했다. 그러나 이 모스크 건설에 결정적 역할을 한 파이잘 국왕은 착공 1년 전인 1975년 조카에게 암살당했다. 파이잘이란 이름은 모스크와 도로의 이름으로 남게 됐다.


 
다마네코산식당
다마네코산 정상에 있는 고급 식당.



88m 높이의 미나레트(첨탑) 4개를 세우는 등 모스크의 기본 구조는 따르고 있지만, 거대한 삼각형의 콘크리트 지붕 8개로 40m 높이의 천장과 기둥 없는 넓은 홀을 만들었다. 전통적 돔 구조가 아니라 뾰족한 삼각 지붕은 보수적인 무슬림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고 하는데, 외관은 베두인 텐트의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다. 모스크 지붕꼭대기의, 이슬람을 상징하는 초승달 조형물은 삼각형의 지붕선과 묘한 조화를 이루는데, 일본 사무라이의 모습이 연상된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어, 신발을 보관하는 곳에 주니까 외국인이라 보관료를 받지 않는다. 맨발에 뜨거운 대리석을 깡총거리며 모스크와 회랑을 둘러보는데, 평일인데도 제법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와 즐기고 있다.

모스크 이곳저곳을 한시간여 둘러 보고 이슬라마바드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다마네코산으로 차를 돌렸다. 다마네코산 정상에 위치한 고급음식점에는 많은 파키스탄인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미리 예약한 전망 좋은 베란다에 앉아 조금은 질기지만 먹을만한 소고기 스테이크를 즐기면서 이슬라마바드를 내려다본다. 아쉽게도 스테이크에 시원한 맥주나 달콤한 와인 생각이 간절하지만 이곳 파키스탄에서는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알코올류는 없다. 간혹 개인 주택에서 술을 마시는 경우는 있다고 한다.

한국과 비슷한 위도인지 봄 햇살에 박무로 시야를 가려 제대로 시가지를 볼 수 없다. 많이 아쉽지만 다음 여정이 기다리는 관계로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식사를 마치고 구시가지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로 이동 본격적인 카라코람하이웨이 여행을 준비한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내려다 본 가든에서 삼삼오오 가족들이 모여 식사하는 모습은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다.

이른 아침 룸서비스로 가져온 조식을 먹고 이슬라마바드를 떠나 간다라 미술의 발상지인 탁실라 박물관으로 향했다. 탁실라는 그리스식 이름이고 산스크리트어로는 ‘탁샤실라’라고 한다. 한문으로는 ‘법현전’에서 축찰시라(竺刹尸羅), ‘대당서역기’에서는 저우시라(咀又始羅)라고 했다. BC 3세기에는 마우리아왕조가 불교 문명을 전했는데, 7세기 중반 탁실라에 온 당나라의 현장 스님은 불교가 이미 쇠퇴일로를 걷고 불사들은 폐허가 되었다고 기록했다.

영국의 마셜이 1913년부터 22년간 이곳에서 발굴작업을 진행한 결과, 기원전 500년부터 약 1천년 동안 왕조를 달리하는 다양한 유적이 드러났으며, 1980년 유네스코는 탁실라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미술대사전(1998, 한국사전연구사)은 탁실라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간다라 미술의 꽃이라고 하는 파키스탄에 있는 고대 도시 불교유적지이다. 라왈핀디에서 북서쪽 약 32km, 광대한 분지의 동부 구릉에 연하여 남에서 비르(Bhir) 언덕, 시르카프(Sirkap), 시르수흐(Shirsukh)의 3대 유적이 시대순으로 나란히 있고, 도시 주변과 구릉부에 많은 불교 사원터가 있다.

비르 언덕이 B.C. 6세기부터 박트리아의 그리스인 침입 이전까지, 시르카프는 그 이후 쿠샨 조의 지배 초기까지, 쉬르수흐는 쿠샨 시대에 해당한다. 서북 인도의 불교도에 의한 조형활동의 시작과 관계있는 도시는 시르카프이고 불교사원은 인도·파르티아 기의 시가지에 나타났는데 대말굽형 형태의 사당과 간소한 장식의 스투파 유적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탁실라박물관
탁실라박물관 출입문이 닫혀있다. 월요일은 휴관.


탁실라는 고대 교통의 중심지에 있었고, 간다라의 차르사다와 함께 서북 인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이민족의 되풀이되는 침입과 지배로 복잡한 문화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고고박물관은 소규모이지만 부근의 사원, 도시 유적으로부터 출토한 석조, 소조, 테라코타의 조각, 화폐, 토기, 장신구 등의 충실한 소장품을 자랑한다.

그런데 탁실라 박물관을 방문한 날이 월요일, 휴관으로 관람을 다음으로 미루고 유적발굴 현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탁실라에서 가장 큰 사원 다르마라지카 사원에서 대형 스투파와 조각상들 그리고 사원 내부의 수행자들이 머물던 공간 등을 둘러봤다. 현지 문화 해설자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한 시간 정도 안내를 받았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으로 그리스인들이 이곳에 와서 신들을 조각하는 방법을 전수해, 이곳 사람들이 처음으로 부처님을 조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부처님의 얼굴이 그리스 신들의 모습과 흡사하고 부드러운 주름이 잡혀있는 가운을 입은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불상들은 점차 인도에서는 인도인의 모습으로, 중국으로 가서는 중국인의 모습으로 포교 경로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며 모습도 점차 현지화되었다. 신라에서는 아름답고 자애로운 석굴암 부처님으로 완성되었다.

간다라 미술의 꽃 탁실라 관광 후 베샴(Besham)으로 출발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카라코람 하이웨이에 들어섰다. 자그마한 시장에 들러 과일도 사고 물과 간식도 준비했다. 이슬라마바드를 벗어나서 북쪽으로 본격적인 여행길에 나섰다. 차창 밖의 풍경에서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차도르나 히잡 등을 쓰고 있는 여성들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시장의 과일이나 채소 가게에도 여성들은 물론 여자아이들조차 없고 남자들과 어린 남자아이들뿐이다.

점심 때쯤 아보타바드(Abbottabad)에 도착했다. 이슬라마바드를 벗어나 주요 도시를 거칠 때에는 항상 검문소가 있어 외국인들의 인적사항과 행선지를 체크했다. 여권 복사본 등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만 통과할 수 있었다.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100여km 거리에 있는 아보타바드는 해발 1천256m에 위치한 정부군 및 관리를 위한 여름 주재지로 3개 파키스탄 육군 연대가 주둔하고 있다. 2001년 911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테러를 주도한 빈라덴의 은신처가 군사학교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2011년 5월 2일 파키스탄 정부와 보안당국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전격적으로 벌어진 미 해군 특수부대의 작전으로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된 곳이다.

아보타바드를 지나 베샴으로 가는 길은 여느 시골길과 다름이 없다. 많은 트럭이 쉴사이 없이 도시와 도시의 물자를 나르고 있었다.

박윤수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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