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사랑에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 승인 2018.07.3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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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대구경북 다문화사회연구소장


유리병 속의 보랏빛 스타티스 드라이플라워가 형광등 빛에 반사되어 자수정처럼 빛난다. 두 남녀는 어색함을 감추려는 듯,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꽃에만 시선을 두고 있다. 꽃말이 ‘영원한 사랑’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의미를 가진 스타티스 앞에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침묵이 흘렀다. 나는 전문가답게 이 상황을 잘 풀어야 된다고 생각하며 헛기침을 했다. 국제결혼은 문화 차이, 언어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오해로 인해 새내기 부부들이 토닥거리기도 한다. 부부싸움의 원인은 외국사람이나 한국사람이나 비슷한가 보다. 사소한 오해의 불씨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때에 소통하고 해결해야 한다. 한국에 온 지 한 달이 채 안된 신부는 눈이 퉁퉁 부어 있고, 억울한 사연이 있는지 남편의 눈을 피했다. 하지만, 남편은 어제 전화통화로 자신이 화가 난 이유를 내게 설명해서 그런지 당당한 표정이었다.

순간, 베트남에서 맞선 장소에 나온 신부의 수줍은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3년 전에 필자를 통해 결혼한 신부의 동생이다. 동그스럼한 얼굴에 순박하고 복스러워 보였다. 밝고 환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지금의 남편에게 “죽을 때까지 나를 믿고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질문했다. 그 말에 감동을 받은 신랑은 그 자리에서 마음을 정했다.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는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남녀 간의 첫 느낌은 3초 만에 결정된다 했던가.

그런 커플이었기에 그의 전화 내용을 듣고 당황스러웠다. 얘기인즉, 신부의 일상생활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다. 베트남 친정언니와 메신저 하고 전화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 화를 냈고, 신부가 울고 토라져서 서로 말을 안한다고 했다. 신부랑 같이 사무실에 오면 통역을 통한 상담으로 문제를 풀어보자고 했다. 우선 통역에게 신부들이 한국에서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나의 입장을 이해 해달라고 부탁했다.

한국에서 신부들의 친정엄마 역할을 맡다 보니 사장님이라는 단어보다 이모라고 부르는 신부들이 많다. 신부는 통역의 말을 듣고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신부는 얘기 중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많이 속상한 듯 보였다. 신부의 얘기는 남편이 새 직장으로 발령 전이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사사건건 간섭을 해서 숨이 막힌다는 것이다. 신부는 먼저 결혼한 언니에게 한국 요리를 매일 전화로 배우고 있었다. 남편의 밥상을 차리기 위해 계란말이·김치찌개· 된장찌개 등을 배웠다. 남편 출근시간에 맞추어 7시에 밥상을 차리는데, 요즘은 신랑이 늦잠을 자고 안 일어난다고 불만을 얘기했다. 신부는 한국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남편이 화를 내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신부의 말에 공감이 갔다. 하지만 남편의 입장도 있어서 남편이 아내가 한국생활이 힘들까봐 관심을 많이 가져서 그렇다고 해명했다. 남편에게 말했다. 적응시간이 필요하다고. 아내를 믿고 기다리고,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그 말을 듣던 신랑도 미안한지 겸연쩍게 웃으며 “우리 이제 밥 먹으러 가요”라며 에둘러 미안함을 표시했다. 아마 아침 끼니도 거르고 사무실에 온 눈치였다. 아내가 해바라기처럼 환하게 웃었다. 처음 베트남에서 만났던 그 모습이었다. 내게 “이모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포옹했다.

진심으로 이 부부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두 사람에게 각각 손편지를 썼다. ‘아내를 믿고 기다리세요’ ‘당신의 남편은 아내를 정말 사랑합니다’. 신부에게 손편지를 소리내어 읽어보라 했더니 까르르 웃었다. 그 웃음 속에 남편에 대한 사랑의 확신이 느껴졌다. 남편의 표정에도 안도감이 흘렀다.

부부싸움 할 때마다 손편지를 꺼내보라고 당부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손편지를 꼭꼭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날, 남편에게 감사의 인사 카톡이 왔다. 나는 그들이 앉은 원탁 위의 스타티스 꽃을 카톡에 담아 보냈다. ‘두 분은 영원한 사랑이 꽃말인 이 스타티스 앞에서 변하지 않는 사랑을 약속했습니다’ 문구와 함께.

사랑에도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하다. 씨앗을 심는다고 바로 꽃이 피고 열매가 맺지 않듯이, 인고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곁을 내주는 건 식물이건 사람이건 매한가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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