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보씨의 가을
기보씨의 가을
  • 승인 2018.08.02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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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보씨는 준비 없는 이별을 벼락 치듯 겪고 나니

가을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있었다



어제보다 바람이 건조하다

밭두렁 어디엔가 심어놓은 콩들이

슬픔의 틈사이로 머릿속을 채웠다



언제나 콩타작은 망자의 몫이라

아제, 질부 눈피해 콩타작 나갔다가

피그덕 피그덕

진즉에 갈아서야 할

바람 빠진 외발 수레바퀴 돌아가는 소리에

가슴이 서늘하게 저렸다



콩더미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은 욕구가

슬픔을 누르고

콩꼬투리는 한낮 햇살에

기보씨의 가슴처럼 타닥거리며 벌어진다.

이 가을 기보씨는 처음으로 농부인 것이 서럽다

그 놈의 콩 때문에









◇이기숙=대구 출생. 2004년 ‘작가정신’으로 작품 활동.



<해설> 기보씨가 이별을 당하게 된 것은 아마 시골 농사꾼이기 때문인 듯하다. 이 시의 화자는 절묘하게 콩꼬투리에 기보씨 이별의 아픔을 인입하였다. 콩이 익기 위해서는 꼬투리가 터져야한다. 4연에 잘 묘사되어 있다. 아무튼 아픈 가슴을 씻어내고 애써 가꾼 농작물(콩)을 수확할 수밖에 없는 농부의 슬픈 자화상이다. 아픔에 손 놓고 살 수 없는 농촌 삶이기에 그러하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피폐한 우리 농촌 현실이기도 하다.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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