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은 비뚤어져도 주라는 바로 불어라
입은 비뚤어져도 주라는 바로 불어라
  • 승인 2018.08.0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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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전 중리초등교장


모두들 모범 정치인이라 했다. 평소 단벌 신사의 대명사였고 청렴한 인상을 남긴 사람이었는데 ‘한 푼도 안 받았다.’고 했던 노회찬 전 국회의원은 투신자살을 했다. 사실 수사도 받기 전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유서에 남아있다. ‘돈을 받은 것은 어리석었다. 법정형으로도 정의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에서 우리는 그의 진심을 유추할 수 있다.

영조 때의 홍만종은 순오지(旬五志)에서 ‘구수사취라당직(口雖斜吹當直)’이라 했다. 정조 때의 이덕무도 ‘열상방언(洌上方言)’에서 ‘구수괘창직취라(口雖唱直吹螺)’라 하였다. 둘 다 ‘입은 비뚤어져도 주라는 바로 불어라.’는 뜻이다. ‘주라’는 소라껍데기로 만든 취주악기를 말한다. 이 속담은 ‘말만은 사실대로 정직하게 하라.’는 의미이다. 순오지와 열상방언은 옛날부터 말의 중요성을 일깨우던 민가에서 떠도는 말이나 속담을 모아 놓은 책들이다.

정조 때 정약용도 ‘이담속찬(耳談續纂’에서 ‘찬전유감언전유람(饌傳愈減言傳愈濫)’이라 했다. ‘음식은 갈수록 줄고 말은 갈수록 는다.’는 뜻이다. 말은 이리저리 옮겨질수록 변질되고 과장되기 쉽다는 의미이리라.

당시의 학자들은 우리나라의 속담들을 한문으로 남겼다. 한문으로 쓰고 풀이한 속담이긴 해도 모두가 진실과 사실을 담은 것들이다. 다른 나라의 어떤 속담보다도 뜻이 깊고 다채롭다. 어떤 내용은 품위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한 쓰임의 다양성도 풍부해 뽐낼만한 가치가 있다.

필자의 초임교사 시절에는 이삭줍기가 있었다. 여름엔 보리이삭을, 가을엔 벼이삭을 주워서 학교에 가지고 와야 했다. 이삭줍기할 때에는 3~4일 정도의 ‘가정실습’이라는 것이 있었다. 가사를 도와야하는 기간이다.

그 때 학반 아이들이 담임교사 책상 위에 돼지저금통을 사 놓았었다. 아이들은 틈틈이 이삭을 주워 팔아 돼지저금통에 돈을 모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돼지저금통은 배가 갈라져 화장실에 버려져 있었다.

아이들에게 “사실대로 정직하게 고백하라.”고 고함쳤다. 이 말은 순오지에 ‘언불가부직(言不可不直)’으로 나온다. 학급에서 가장 모범 여학생이 손을 들었다. 견물생심이었으리라. 그의 어머니는 처음엔 자식의 잘못된 행동을 믿지 않았다. 아이는 집에서 부모에게 심한 닦달을 당하고 혼나기까지 했다. 결국 집에서 쫓겨나와 다른 집 처마 밑에서 며칠을 보내야만 했다.

요즘 교사들은 학생들의 잘못에 이런 속담도 말하지 못한다고 한다. 학부모들의 항의가 ‘우리 아이 입이 왜 비뚤어졌느냐?’고 거칠게 항의를 하기 때문이란다. 또 국어의 말하기 과목이 있는데 ‘말은 갈수록 느는 것.’이 바른 교육 아니냐고 따져 묻는단다. 교육이 참 힘들어지는 세상인 모양이다.

홍만종의 구수사(口雖斜)나 이덕무의 구수괘(口雖)에서 사(斜)와 괘()는 ‘입이 비뚤다’의 의미이긴 하다. 그렇지만 중풍증세의 한 가지로 입과 눈이 한 쪽으로 쏠리는 현상인 와사(?斜)의 의미와는 다르다. 홍만종이나 이덕무는 속담풀이에서 이 말은 ’정직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며칠 전 법원의 중재위원회에 나가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요즘 법원의 판사들은 굉장히 말조심을 하고 있단다. 지난날의 고위급 대법관들을 비롯하여 모든 법관들이 죄인인양 비쳐줘서 안절부절 하고 있단다. 도무지 앞일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어렵기 때문이란다.

그 친구는 ‘여리박빙(如履薄氷)한다.’는 표현을 썼다. 판사들이 ‘얇은 얼음판위를 걷는듯하다.’는 뜻이다. 웬만한 일은 중재위원회에 일임한다고 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는 판사들이 중재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좋은 의미도 있지만 신상에 관계되는 일에 부딪히기 싫다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교육자들의 사랑이 제자들에게서 떠나 있고, 옳고 그름을 가려줘야 할 판관들의 자세가 어정쩡하다면 걱정이 된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뿐이다.

명심보감에도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따듯하기가 솜과 같고,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날카롭기가 가시 같다. 그래서 한마디 말의 무겁기가 천금과 같다.’고 하였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진실로 용기 있는 사람은 가볍게 죽지 않는다.’고 했다. 왠지 ‘입은 비뚤어져도 주라는 바로 불어라.’는 속담과 자꾸 오버랩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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