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離散)의 징검다리
이산(離散)의 징검다리
  • 승인 2018.08.0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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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대구는 분지(盆地)다. 말 그대로 밥그릇처럼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여름에는 극서(極暑)지역으로, 선두를 달리는 곳이 바로 대구광역시다. 지형에 따라 인성도 영향을 받는다는 오래된 연구결과를 예로 들 것도 없이, 대구 토박이들은 ‘욱’하는 성격과 ‘그래서 뭘 어쩌라고’식의 어깃장을 놓는 사람들이 많다. 고속철도 개통이후, 다소 지방성이 완화되고 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지역성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정계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을 수없이 배출했지만, 동성로 지하철 참사 이후 영화 「배트맨」의 배경이 된 혼란과 범죄의 도시 고담(Gotham)이라는 오명까지 짊어진 보수의 도시 대구다. 학생운동을 비롯한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자주민족의 정점을 보여줬던 대구가 지금은 경제 자립도마저 숨죽이는 도시가 되었다. 자조(自嘲)할 기력도 없을 만큼, 소상공인들의 한숨소리가 폭염보다 무덥다. 대구 중앙로에는 2009년에 예산을 들여 완공한 실개천이 있다. 불과 십년이 지나기도 전인, 올 4월에 전 구간에 걸쳐 개천을 덮고, 경계석을 철거했다. 한 마디로 실개천이 사라진 셈이다. 시 교통정책과 관계자는 “보행 공간 확보와 안전사고 방지가 이유”라고 밝혔지만, 예산낭비라는 아쉬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그래서 시민들은 더 덥다.

연일 폭염주의보가 발령한 가운데, 바다와 계곡 등에는 피서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그나마 그곳을 찾을 수 있는 여유라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필자가 어렸을 당시만 해도 크고 작은 개울들이 많았다. 신천에서도 얼마든지 물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누가 놓았을 지도 모를 크고 작은 돌들로 이루어진 징검다리들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징검다리를 건널 때는 어느 정도 물에 빠질 수도 있다는 각오는 해야 한다. 돌 하나라도 잘못 밟거나, 보폭이 맞지 않으면, 아차 하는 순간에 빠져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긴장감과 무사히 건널 수도 있다는 기대감은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옛 생각이 나서 가창 쪽의 개울을 찾았더니, 아직도 그곳에는 징검다리가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첫 돌을 밟았지만, 이내 되돌아서고 말았다. 얕은 개울에 비치는 따가운 햇살, 여기저기 내던져진 술병들과 고기를 구운 것으로 보이는, 검게 그을린 돌무덤들이 추억들을 밀어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곳에 발을 담글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다.

오는 20일에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이 100명씩 만난다.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의 판문점 선언에 따른 조치다. 겨우 100명이다. 현재 약 5만 7천명의 이산가족 생존자의 수를 감안해볼 때, 터무니없는 규모가 아닐 수 없다. 생존자들 대부분이 70세 이상의 고령이다. 분단 이후 20여 차례에 거쳐서 2천여 명이 상봉을 했다. 그뿐이었다. 재상봉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꿈에도 그리던 가족을 한번 보았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나머지 이산가족들은 번번이 심사에서 떨어지면, 또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막막함으로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 왜 매번 백 명인가.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이 가동될 당시에도, 대부분의 이산가족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야 했다. 우리 정부는 물론이고 북한의 공조가 절실한 대목이다. 이제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남아있는 이산가족 전부를 한 해에 모두 만나게 해 줄 수만 있다면, 반드시 해주어야 한다. 그들은 양극체제 당시, 이념의 희생자들이다. 남과 북은 이산가족의 수를 당장 늘려야 한다. 무엇이 두려운가. 무엇을 더 감출 것이 있는가. 김정은 위원장은 체제보장의 해답을 미국으로부터만 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 민족의 동의와 협조를 구하는데, 가장 큰 힘이 되어 줄 사람은 바로 동란으로 헤어진 이산가족들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권리는 기본권에 해당된다. 남과 북의 이해관계를 따지기에 앞서 우선 가족들이 생사부터 확인하고, 서신은 꾸준히 오갈 수 있어야 한다.

이산가족문제는 징검다리에 쓰이는 바위나 돌멩이를 놓는 일과 다르지 않다. 너무 간격을 멀리 두면 통일의 개울을 건널 수가 없다. 가족의 생사조차 모르는 채 살아가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상식적으로 지금 추세대로라면, 이산가족들이 모두 상봉하려면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정권이 바뀌고 남북 관계가 경색되기라도 하면, 그마저 기대할 수 없다. 이산가족의 현안이 해결되고 나면, 남과 북이 함께 해야 할 일은 산재해 있다. 경제협력과 종전선언도 해야 하고, 에너지 자원 개발도 협력을 통해서 진행해 나가야 한다. 남측의 청년실업도 남북 경협이 활성화되면, 해갈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좀 더 욕심을 내본다면, 일본의 위안부 관련 문제들도 함께 해결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은 이를 수도 있지만, 우리 할머니들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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