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 사이사이 만나는 뜻밖의 즐거움
오솔길 사이사이 만나는 뜻밖의 즐거움
  • 황인옥
  • 승인 2018.08.02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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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 설치작품전 ‘산책’
봉산문화회관서 11일까지
봉산 2018 HCA 7
김재경 전시작 ‘산책’. 봉산문화회관 제공

천장부터 바닥까지 꽉 채운
형형색색 180개 조형물
일상적·물리적 공간 넘어
내면 감정 형태로 추상화
문자 ‘好’ 담아 메시지 전달

하늘하늘한 흰 천을 통과하고 내부로 들어오면 “와~” 하고 탄성을 쏟아낸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만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전시장 입구의 천장부터 바닥까지 드러워진 천 앞에서 잠시 주저했던 감정이 전시장에 설치된 색색의 180여개 조형물(造形物) 앞에서 무장해제 된다. “저기 강아지도 있다!” 그 중 한 아이가 강아지 형상(形象)을 가리키며 소리 치고는 전시장 중간에 드리워진 흰 천 사이로 숨어들었다.

작가 김재경이 봉산문화회관 2전시실에 초대됐다. 자작나무판으로 만든 다양한 크기의 조형물이 관람객과 만나고 있다. 전시작은 주제와 형태, 구성면에서 익숙했다. 작가가 간간이 소개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규모와 구성, 콘텐츠면에서 한층 짙어진 상황. 최근 몇 년 사이 소개됐던 설치작업의 총정리 버전 같았다.

이번 전시에는 허공과 바닥, 벽면 등 공간 전반을 조형물로 채웠다. 한 사람이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지나가야 할 정도로 꽤나 많은 조형물들이 무심한듯 툭툭 던져졌다. 고양이, 개, 사람 등의 조형물들이 뿜어내는 내밀한 이야기로 전시장이 수선스러웠다.

설치 방식에 일정한 규칙이 있을까 싶었는데, 작가가 “산책”이라는 단어를 썼다. 산책길은 넓은 신작로가 아니라 대개 좁은 오솔길. 조형물 간의 간격도 그 수준에 맞춰졌다는 것. 그리하여 전시제목도 ‘산책’이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나무나 풀, 강아지, 고양이 등도 자연의 일부라고 봐요.”

산책하는 장소는 도심일 경우 공원이나 강변, 도심을 벗어나면 숲이다. 그러나 작가는 보다 광의적으로 해석한다. 물리적인 공간에 국한하지 않는다. 일상의 장소, 새로운 경험이나 사람, 책 속의 시·공간 등 추상적인 요소들도 산책의 범주에 포함한다. “산책에는 다른 경험들을 통해 일상을 새롭게 인식함으로써, 사고의 확장을 이룬다는 의미가 담겨있어요. 그렇게 보면 그 대상은 다양할 수 있죠.”

초기에는 회화에 집중했다. 90년대에는 나무 등의 자연풍경 이미지를 지우거나 남기는 기법으로 회화작업을 했다. 이후 2009년까지 내면의 감정을 추상 평면으로 구현했다.

미세한 변화가 감지된 것은 2010년도다. 기존의 일부 작품들을 정리해 버리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요소를 캔버스에 오려 붙이는 재구성을 시도했다. 특히 분기점이 된 것은 전주 교동아트 레지던시 프로그램 이다. 이 시기 변화의 단초가 마련됐다. 관광지인 전주한옥마을 골목길을 걸으면서 주제 ‘산책’을 떠올렸고, 산책길에 만나는 다양한 인물과 동물이 조형 형상으로 내면에서 형태를 갖춰갔다.

이후 2013년 대구예술발전소 입주작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설치 작업은 지속되었으며, 형식에서 계속된 확장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공간에서, 다른 분야의 예술가와 협업작업을 통해 설치작품의 형식이 확장되었어요.”

조형물의 재료는 변화무쌍하다. 초기에는 유화물감으로 그린 캔버스나 골판지에서 재료들을 오려서 사용하다, 이후 트레팔지에 아크릴, 홀로그램 픽보드 등의 다양한 재료로 변화를 거쳤다. 현재 아크릴 판과 자작나무 판 등이 주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문자를 적극 활용하며 또 하나의 형식적 변화를 추가했다. 작가가 “문자의 활용은 메시지나 감정을 보다 내밀하게 전달하기 위한 일종의 형식”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조형물들에서 자주 발견되는 호(好)자가 흥미로웠다. “낙관의 일종이냐”고 물었더니 “작업할 때 작가의 내면 상태,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압축”이라고 했다. “관람객들이 제가 새롭게 경험한 것들과 좋아하는 것들을 표현한 공간을 산책하며 마음의 여유와 즐거움을 느끼셨으면 해요.”

정혜숙, 한호, 정지현과 함께 초대된 봉산문화회관 기획 ‘2018 Hello! Contemporary Art : 유리상자-아트스타11년 설치미술로부터’전은 11일까지. 053-661-350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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