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 승인 2018.08.0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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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중앙로역 지하도를 빠져 나왔다. 칠월의 끝자락, 송곳니처럼 등짝에 박히는 햇살을 피해 지붕을 차양막 삼아 건물아래만 골라 나란히 걷던 그녀가 말했다.

“그래도 응달이라고, 지붕으로 가렸다고 더위가 한 풀 꺾여있네.”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가 대답을 했다. 그녀를 어떻게 위로해야할까 눈치를 살피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양지만 있으면 못 살지 싶어. 그래도 응달이 있어 양지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 같아. 맨날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다면 아마 난 사는 재미가 덜할 것 같아. 불행한 일도, 우울하고 힘든 날들도 견디고 이겨냄으로써 더 큰 가치를 깨닫게 될 테고. 행복이란 것도 배로 느끼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얼굴에 드리워진 응달이 살짝 걷히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말했다.

“와! 그래도 친구라고 젤 낫네. 시 쓰더니만 참, 위로도 고상하게 하네. 그래 웃자, 웃어넘겨 버리자. 우야겠노 이미 지나간 일 되씹으면 머하겠노. 날도 더븐데. 빨리 가서 맛있는 밥이나 묵자. 내가 살게”

그녀는 외국으로 파견근무 나갔던 남편이 현지처를 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정년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아랫사람들은 밀고 올라오고 더 이상 올라 설 때가 없었던 남편의 자리는 사표를 쓰든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해야 했지만 그도 어려워 아예 외국지사로 5년의 계약기간을 두고 가족과 떨어져 파견근무를 선택했던 것이라고 한다.

황혼이혼이 유행인 요즘이라고들 하지만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더군다나 결혼을 앞둔 아이들을 두고 이혼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남편의 그늘 아래서 평생 벌어다주는 돈으로만 살다보니 지금에 와서 혼자 살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런 자신이 비겁해 보이기까지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설거지라도 하면서 독립할 요량으로 구직란을 뒤져봤지만 오십이 넘은 나이를 써 줄 데라곤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역대 최악의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다음 주면 입추라고 하는데 햇살은 화를 거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폭염의 출구는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횡단보도 건너 밥집을 찾아 걸으며 장정일 시인의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이라는 시를 떠올렸다.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고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중략)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 흘렸지요”

젊은 엄마가 아이를 업고 또 한 손엔 아이를 걸리며 우리 앞을 지나간다. 혼자도 더운데 아기 엄마는 오죽 더울까. 요즘 같은 날, 특히 더 고되고 힘들 텐데. 하지만 덥다고 해서 아기가 엄마 품을 떠나려 들지는 않을 테고 그건 엄마역시 마찬가지일 테다. 삶이 힘들지만 그럼에도 견딜 수 있는 이유 또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 혼자만으로도 힘들지만 내가 보살펴야 할 것들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이 내게도 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단순한 고통만은 아닌 기쁨이 되고 성장을 시켜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던 것 같다.

어느 그늘에서든 쉬는 사람이 있으면 그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려 조심스레 걷게 된다. 앞서 걷는 그녀의 등 뒤에서 이 뜨거운 계절만큼 견딜 수 없었을 그간의 아픈 상처를 향하여 애썼다는 위로를 전한다. 그리고 살다가 지친 사람들이 잠시 그늘 아래 쉴 때만이라도 복잡하고 서러운 것들 모두 다 잊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모두의 마음과 마음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드나들었으면 좋겠다. 하루를 다한 햇볕이 붉은 노을 속으로 총총 기울어 간다. 캄캄한 그늘을 드리우고 눈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이 될지라도 내일이면 다시 기적처럼 해가 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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