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만난 작가] 화가 박상언...겹겹이 쌓아낸 색, 캄캄한 세상 비추네
[서영옥이 만난 작가] 화가 박상언...겹겹이 쌓아낸 색, 캄캄한 세상 비추네
  • 서영옥
  • 승인 2018.08.0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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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수술과 여린 빛같은 색점우리가 간과한 삶 일부 조명
회화, 설치 등 경계없는 작업범어아트스트리트서 전시 중
빛-휴식
박상언 작 ‘빛-휴식으로 가는 길’

<서영옥이 만난 작가>

 

박상언 작가
 
작업은 결국 관계 맺음이다. 그 작업과정에 감사함이 뒤따른다면 축복받은 작가이다. 작가 박상언(사진)이 그렇다. 그녀는 매사에 감사하며 욕심 없이 즐겁게 작업에 임한다고 한다. 작가 박상언을 만나면 유쾌해지는 이유이다.

누구나 가슴 속에 과거사 하나쯤은 품고 살지 않을까. 불안에 시달렸던 시간과 슬픔에 함몰되었던 시간, 바쁜 걸음에 놓쳐버린 시간 등. 때로는 그 시간들이 미궁에 들기도 하고 높낮이가 다른 통로를 드러내기도 한다. 때론 막다른 길목이었다가 까만 밤하늘의 별빛 같은 추억들을 되살려 놓기도 한다. 움직이는 시간이 때론 친밀했던 관계를 무화(無化)시키기도 하지만 결국 모두 다 소중하다. 결핍과 부정적인 시간마저도 현재의 밑바탕이기 때문이다. 박상언의 작업이 그렇다.

작가 박상언은 시간을 추억한다. 캔버스 위에 자신의 지난 시간들을 점점이 풀어놓는다. 일부는 꽃으로 나머지는 빛으로 푼 시간 속에 박상언의 발자취와 사유가 버무려진다. 작품의 주제와 재료뿐만 아니라 작업방식이 일관되지 않은 이유이다. 삶은 종종 양가적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습으로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만큼 어수선한 감도 없진 않다. 그러나 일관되지 않은 형식들은 하나같이 시간의 결을 담고 그 의미를 재정의 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지금여기에머물다
박상언 작 ‘지금, 여기에 머물다’

박상언은 스스로를 틈새 작업하는 작가라고 말한다.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인 작가가 가정을 보듬으며 틈틈이 하는 작업이란 뜻이다. 시간을 조각내어 하는 틈새작업은 박상언만의 고유한 조형언어로 자리매김한다. 그 조형언어들을 모아서 지난 4월 23일부터 5월 17일까지 부산 예당갤러리에서 개인전<보이지 않는 위대함에 견주다>을 열었다. 현재(2018년 8월) 대구 범어아트스트리트 space 3에서 전시 중인 <휴식으로 가는 길>도 지난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 높낮이가 서로 다른 약 30×30㎝ 크기의 우드락 상자 98개가 다양한 색점들을 머금고 여린 빛을 우려낸다. 한데 모여 점조직을 형성한 다양한 색깔의 빛은 확장된 꽃잎의 은유이다. 전시장 한 벽면을 가득 메운 꽃잎의 은유가 빛을 발산한다.

박상언은 지금까지 회화와 도자기 설치 등,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전시에 참여하였다. 그녀의 학부 전공이 불교미술이었다는 것은 현재를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현재는 과거를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특히 작가가 꾸준히 붓을 놓지 않는 불화(佛畵)는 불교의 종교적 교의가 전제된 그림으로 그 용도가 뚜렷하다. 사원을 장식하거나 불교의 교리를 쉽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 이외에도 의식을 위한 예비용이다. 각 시대마다 차이는 있지만 표현방법상의 규칙이 요구되는 불화는 현재 작업방식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주목할 것은 박상언의 현재 작업이 불화와는 거리를 두지만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조형언어로 끌어들인 빛이 종교가 추구하는 생명성과 긍정 등의 의미와 맞닿기 때문이다. 마치 염화미소처럼. 작가는 지난 경력을 애써 가리거나 지우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의 작업방식에 만족할 뿐, 오히려 현재의 작업이 더 자연스럽고 즐겁다고 하는 대목은 향후의 작업방향까지 가늠하게 한다.
 

무엇이되지않더라도-2
박상언 작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작업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는 박상언에게 직관은 치밀한 목적과 의도에 앞서있다. 내면에 침잠된 순수함과 진지함은 타인의 만족을 겨냥한 세련된 조형어법을 넘어섰다. 순수한 기쁨으로 작업할 때 주변의 시각도 아름다움으로 물든다. 이러한 그녀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원천지는 자연이다. 빛과 꽃, 꽃 중에서도 꽃 수술이 모티브인 것은 우리가 간과하거나 가려진 것에 대한 관심이자 배려이다. 겹겹이 포개어진 작은 점들은 가려진 삶의 표상이자 꽃의 은유인 것이다. 흘러간 시간은 기억 속에 머물다가 가끔은 향수가 되어 다시 돌아온다. 향수는 어렴풋한 삶마저도 귀한 추억의 파편으로 남곤 한다. 그녀의 작품에서 핵심 모티브인 꽃 수술 이미지가 그렇다. 씨앗의 의미와도 상통하는 꽃 수술은 흩뿌린 듯 지우다가 겹치기를 반복하며 남긴 희망의 상징체이다. 이때 꽃은 자아를 회복하고 확장시켜가는 과정 즉, ‘자아상’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삶의 사연들은 기억 속에 축적되고 시간은 다양한 사연을 품고 그 기억을 재편집한다. 작가는 이러한 시간 속에 남겨진 자신의 발자취를 꽃과 빛에 대입시키고 있다. 응집된 물감 한 점, 한 터치의 붓 자국이 편집과 재생의 과정을 두루 거치면서 작가와 관람자를 관계 맺어준다. 관계맺음의 주요 매개체는 다양한 색을 머금은 빛, 그 빛이 시·공간을 확장시킨다. 색은 대개 사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달라진다. 과거의 경험이나 주위의 환경에도 영향을 받는다. 모두 주관적이며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것이 색의 속성이다. 얇은 막을 통과해 푸르거나 노랗게 변주되는 빛은 결국 박상언의 내면에 남아있던 기억 조각과의 연결고리인 셈이다. 근원의 빛이자 세상을 향한 발언이면서 밝음을 향한 염원 다름 아니다. 그녀의 마음을 밝히는 등불이라 해두자.

태초에 신이 세상을 만들 때 빛을 으뜸으로 친 것처럼 박상언에게도 빛은 곧 현재를 밝히는 으뜸의 상징요소이다. 컴컴한 우주(또는 세상)를 비추는 희망의 불빛, 가려진 세상의 어두운 곳을 조명하는 섬세한 마음의 등불인 것이다. 결국 그녀의 작업은 긍정적인 삶의 발자취이자 이정표이며 긍정적인 삶의 변주 다름 아니다. 삶의 변주는 우리의 기대치 안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이어질 박상언의 다음 작업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서영옥 미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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