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돌아서 가는 길
[문화칼럼] 돌아서 가는 길
  • 승인 2018.08.0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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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관장
오래전 이런저런 이유로 포항을 자주 다녔다. 갈 때는 약속시간에 맞추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리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는 가능하면 일부 구간이라도 국도를 이용하곤 했다. 밤이 늦어서야 볼일이 끝나 몸이 피곤하더라도 운치 있는 국도를 즐겨 운전했다. 달이 환하게 밝은 밤에 굽이굽이 안강 재를 넘는 맛은 각별하다. 게다가 밤안개라도 낀 날이면 고개정상에 있는 휴게소에서 커피한잔을 안할 도리가 없다. 아무래도 운전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더 고단했지만 마음은 한결 여유롭고 또 오가는 길이 즐겁다. 속도를 선택하면 풍경은 사라지고 삶의 밀도는 낮아진다는 말이 있다.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는 ‘빠르고 정확함’이겠지만, 그래도 한번쯤 돌아서 가보거나 때로는 느리게 가는 것이 이 세태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오히려 더 많이 필요할 것이다.

출판편집인 맥스웰 퍼킨스와 작가 토마스 울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지니어스’라는 영화를 통해 글을 쓴다는 아름다움을 느껴본 적이 있다. 독자에게 읽히는 책 설득력 있는 글을 쓰기위한 천재 작가와 완벽주의 편집자의 열정적 노력, 대화와 공감 속에 문장들이 다듬어지고 걸작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감동적 장면이다. 하지만 이보다도 나에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교외의 집에서 기차로 출퇴근하는 맥스의 생활패턴. 이런 느림의 시간이 있었기에 울프의 원고를 제대로 발견할 수 있었으며 또한 여유와 깊은 성찰의 시간을 통해 작품을 꿰뚫어 보는 힘을 잃지 않게 된다.

우리는 문화예술에서 창의력을 얻을 수 있다고 얘기들을 한다. 그것이 맞다면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돌아서 가는 것’에서 나온다. 뭔가 깊이 생각해야하고, 답을 찾아야 할 때 나는 가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책을 찾는다. 그것도 내가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닌 책을 골라서 읽다보면 갑자기 찾던 답이 떠오를 때가 종종 있다. 창의력이 있다는 말은 절대 아니지만 공연을 볼 때도 마찬가지, 그래서 늘 메모장을 지니고자 하는 편이다. 창의적 생각은 직선이 아닌 우회적 경로를 통해서 나온다. 생각과 표현의 통로, 그 거리가 지나치게 한쪽이거나 짧아서는 원하는 곳에 다다를 수가 없다. 문화예술을 통해서 우리는 우회의 미덕을 경험할 수 있다.

여러해 전에 모 지역의 구치소장을 만난 적이 있다. 소장께서 구치소 내 재소자를 대상으로 하는 중창단을 만들기 위해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자리였다. 그는 영화 하모니의 주인공 이었던 청주여자교도소 합창단의 서울 공연에 관계한 인연과 또 다른 지역의 교도소장을 지낼 때 만든 합창단으로 인해 그 자신이 감동 받았고 음악이 가진 힘을 보았다. 그때 절실히 느낀 것이 음악이야 말로 그들을 교화 시킬 수 있다. 교정시설의 힘든 생활에서나마 그들이 음악을 통해서 위로받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그래서 중창단을 만들고자 한다는 얘기였다. 나는 그때 그가 음악에 대한 확신과 우회의 기능을 나보다 먼저 발견한 모습에서 음악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기쁨 보다는 부끄러움을 먼저 느꼈다.

철학자 김정운 (나름 화가, 여러 가지 문제연구소장)은 ‘에디톨로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창조는 없다. 이미 있는 것들을 잘 편집하고 연결하는 것이 창조다. 이는 창의력에 기반 한다.’ 초연결, 초지능을 특징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기존의 것들과 융합하고 결합하기 위해서는 창의력이 필수다. 과거보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더 절실히 요구된다.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확인 되는 것은 예술과 인문학이 의학, 공학만큼 중요하다. 이를 통해서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고, 앞으로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에 필수다 라는 기류다.

문화예술을 향유함으로 인해서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고 그래서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면 또한 앞으로의 시대에 이러한 것들이 꼭 필요하다면 지금 사회에는 모두에게 그 기회가 열려있다. 다만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예술가와 관계자부터 이러한 순기능에 대한 인식과 확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헌신하는 사람들은 예술 그것만 바라본다. 이러한 자세야말로 예술이 존재하고 발전해온 근간이고 아름다운 일이긴 하지만 누군가 왜? 라고 묻는다면 이러한 것을 자신 있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의 우리사회는 정말 초 스피드시대 이며 꽉 짜인 틀 속에서 움직여야하는, 여유가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이러한 때에 한번쯤 돌아서 갈 수 있는 여유를 문화예술을 통해서 가질 수 있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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