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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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0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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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윤 시인

사람들은 그곳을 난곡(蘭谷)이라 불렀지만

내게는 난곡(亂谷)

갈 곳 없는 해거름 때면 산자락을 향해 거슬러 올라갔고

아침이면 토해져 버스 종점으로 구르듯 내려왔던 곳

드문 인적에도 맹렬하게 짖어대던 묶인 개

굳게 닫혀있던 녹슨 철 대문

진달래 지천으로 피던 봄이면 담을 넘었다가

늦가을 하얀 약봉지를 들고 돌아오던 Y

뒷집 술주정뱅이가 도끼로 찍어 허물어진 담벼락 아래

따먹지도 못할 억센 깻잎과 잡풀들이 자라고

폭우가 쏟아지면 비가 새던 기왓장

질척거리던 언덕길

한겨울이면 얼어붙던 머리맡 물대접

마중물만 삼키던 마당의 펌프

청춘이 독약 같다고 낙서하던 스무 살

천장이 낮아 일어설 수 없었던 다락방의 새벽

◇이창윤= 서울 출생. 2002년 ‘문예사조’로 등단.

<해설> 화자의 고향은 서울 변두리 난곡(蘭谷)마을로 감자를 주식으로 연명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 명칭이 난곡(蘭谷)이라 했으니 말이다. 난곡은 흰 감자를 뜻하기 때이다.

한데 사람들은 그곳을 난곡(蘭谷)이라 불렸지만 화자는 난곡(亂谷) 즉, 전형적인 가난한 시골마을로 가슴속에 각인되었듯이---.

청춘이 독약 같고 낮은 천장 다락방에 젊은 날을 보낸 화자의 지독하게 가난했던 지난날의 회상이 그걸 잘 말해주고 있다.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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