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는 아빠
아이 키우는 아빠
  • 승인 2018.08.0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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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 ‘우리아이 1등 공부법’저자
올 휴가는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의 스케줄을 고려해 서울 친정으로 간단하게 다녀왔다. 모처럼 가는 고향이라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며 친구네서 1박을 했다.

이번에 만난 내 친구 A는 나와 같은 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방송국에서 꽤 알려진 예능프로그램 작가로 일하고 있다. 친구의 남편 B 역시 우리 과 동기다. 둘은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해서 아이 둘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원래는 둘 다 작가가 되길 소망했으나 친구 A가 먼저 일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남편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게 되었다. B 역시 재능 있는 작가지망생이었지만 누군가는 집안을 돌보고 아이를 키워야했으므로 자신보다 더 재능이 있는 와이프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고 자신은 작가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

물론 B에게 작가가 되지 못한 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늦둥이 막내가 너무 예뻐서 자신의 일에 큰 불만은 없다고 말했다. 나는 일하는 어려움은 친구 A와 얘기하고, 아이 키우는 고충은 친구 B와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아버지께서는 대학생이었을 때 우리 집에도 곧잘 놀러오던 친구 A와 B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으셨다.

나는 “A는 일을 잘 하고 있고, B는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내게 물으셨다. “B는 아직도 직업이 없고?”

나는 대답했다. “직업이 왜 없어요? 아이 키운다니까요.”

아버지는 “사내놈이······” 하시며 쯧쯧 혀를 차셨다.

내가 “둘이 잘 살고 있어요”라고 말하니 아버지가 덧붙이셨다.

“걔네 부모가 얼마나 속상하겠냐!”

자기 자식을 키우는 일이 왜 속상한 일인가? 자식을 키우는 일이 그 무엇보다 보람 있고 숭고한 일이니 제발 한 명이라도 더 낳으라고 나라에서도 얼마나 주장하는데, 왜 B의 부모는 자신의 아들이 자신의 손주를 돌보는 것을 보며 속이 상한단 말인가?

나는 몇 년간 아이를 돌보며 전업주부로 살았지만 그때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네가 집에서 애만 키워서 속상하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오히려 어린 손주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을 하러 가는 내게 “애나 열심히 키우지 네가 무슨 큰돈을 벌겠다고 일을 하냐?”며 나무라셨다.

그렇다. 아버지는 마음속에는 ‘사회에 나가 돈을 버는 일은 남자가 해야 하고, 애를 키우고 집안 살림을 하는 것은 마땅히 여자의 일이다’라는 인식이 있다. 이것은 우리 아버지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평소에는 바쁜 와이프를 대신해 설거지도 잘해주고 청소도 곧잘 하는 우리 남편은 시댁에만 가면 갑자기 사대부가의 선비로 변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시어머니께서 남편이 부엌에 얼씬만 해도 기함을 하시기 때문이다. 남편은 어머니에게 효자아들이 되기 위해 ‘집안 일 따위는 안하는 남편’ 코스프레를 한다.

평소에는 남녀불평등을 경험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이런 일을 겪게 되면 ‘4차 산업혁명의 시기가 이미 도래했는데, 이 나라는 도대체 언제 개화가 된단 말인가?’하는 답답함이 확 몰려온다.

부모와 사회가 “남자가 무슨 애를 봐? 남자가 살림이라니? 남자는 나가서 일을 해야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아버지들이 자신 있게 육아에 동참하지 못한다. 친구 B 역시 가장 힘든 게 뭐냐는 내 질문에 “다른 아이들은 다 엄마가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오는데 나는 내가 매일 가니까 다른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것 같아 힘들다”라고 말했다.

아이를 돌보는 아빠를 보며 “저 집은 아빠가 능력이 없나보지?”라거나 “저 집은 무슨 사정이 있어서 만날 아빠가 애를 보나?”라는 쑥덕거림과 의심의 눈초리를 멈춰야 공동육아가 현실화 된다. “엄마만 시키지 말고 아버지도 육아에 동참해라!”라는 나이 든 부모세대의 주장이 있어야 평등한 가정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것이 뒷받침 될 때 한국의 출산율은 늘어날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가? 만약 나중에 당신의 아들이 “아이 육아는 제가 맡기로 했습니다”라고 한다면 진심으로 즐겁게 축하할 수 있을까? 즐거운 마음이 들기는커녕 ‘엄마가 있는데 아빠인 네가 왜?’라는 생각을 한다면, 당신도 한국의 출산율을 낮추는 적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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