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강 줄기 따라 도착한 곳…만년설 뒤덮인 고봉들 ‘장관’
인더스강 줄기 따라 도착한 곳…만년설 뒤덮인 고봉들 ‘장관’
  • 박윤수
  • 승인 2018.08.0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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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코람 하이웨이 베샴-칠라스-길기트
해가 저물어 베샴 당도
무장 경비원들 출입통제
텅 빈 숙소 긴장감 돌아
낙석 사고에 출발 지연
현지인들과 어울리며
서로 따스한 정 나눠
옛 불교의 중심지 길기트
절벽에 새긴 마애불 유명
카라코람3
카라코람산맥, 힌두쿠시산맥, 히말라야산맥이 만나고 인더스강과 길기트강이 합류하는 지점임을 알리는 표지판과 전망대.

 

박윤수의 길따라 세계로 - 카라코람 하이웨이<3> 베샴-칠라스-길기트

인더스강 줄기를 따라 왕복 2차선의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파키스탄의 작은 마을들을 하나하나 이어가며 북으로 연결된다. 교통량은 많지 않지만 소도시들을 지나가다 보니 평균속도가 40km 정도인 듯하다. 때로는 깎아지른 절벽 밑을 지나기도 하며, 봄철이라 도로 중간중간에 낙석이 많아 지그재그로 운전하다 보니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오후 6시쯤 해가 기울 때 베샴에 도착했다.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난 숙소에는 무장을 한 경비원들이 출입통제를 하고 있었다. 대도시인 이슬라마바드를 떠나 본격적인 카라코람 하이웨이에 들어서서 처음 접하는, 조금은 썰렁하며 텅 빈 듯한 숙소는 긴장감을 준다. 전기사정이 좋지 못한 듯 우리가 들어가니 전깃불을 켠다. 숙소에 짐을 풀고 숙소 뒤꼍으로 나가본다. 인더스강의 회색빛 물줄기가 숙소를 휘감아 내려가고 있다. 주변은 초록색으로 생명이 꿈틀거리며 봄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른 저녁으로 현지 호텔에서 준비한 현지식을 먹고 일찌감치 자리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갑자기 바깥이 소란해지며 서너 대의 버스와 젊은이들의 왁자한 소리가 들린다. 늦은 시각 파키스탄 관광객들이 온 듯하다.
 

카라코람3
눈 덮인 라카포시산을 배경으로 피어난 꽃들.

다음날 아침 식사 중, 베샴에서 4~5km 전방에 낙석으로 인해 차량 통행이 불가하다는 얘기가 돌았다. 엊저녁 늦게 호텔에 들어온 관광객들은 그제 이곳에서 묵고 길기트로 떠난 이들인데, 길이 뚫리기를 기다리다가 숙소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우리 일행은 출발 시각을 늦추기로 했다. 오전 열 시가 지나자 좁은 숙소에 있는 게 불편해 일단 출발을 했다. 십여 분을 가니 차들이 엉금엉금 기어간다. 편도 일 차선 도로, 앞차를 뒤따라 가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검문소가 있는 작은 마을 앞 공터에 많은 차들이 주차해 있었다. 총을 메고 있는 경비병은 차단봉을 내려 통행을 막는다. 수백 대의 크고 작은 차들이 줄지어 도로를 메우고 있다. 그제 내린 비로 산사태가 일어나 낙석을 치우는 긴급공사 중이다. 사람과 장비가 현장에 투입되어 서너 시간 후면 개통이 될 거라고 하는데 이 말을 믿는 이들은 없는 듯하다. 길옆에 차를 세우고 한켠에서는 버너를 켜 취사를 하는 사람도 있다.

외국인이 신기한지 여행가던 대학생들은 우리 일행과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특히 여대생들은 삼삼오오 우리 버스로 와서 대화를 청하며 셀카도 찍고, 십여 분씩 대화를 하고 간다. 여성들이 더 적극적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파키스탄인이 우리에게 호의적이다. 젊은이들은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고 묻고 사진도 같이 찍자고 한다. 나이 든 사람들도 수줍은 미소로 손을 흔들어 주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면 흔쾌히 웃으며 응해준다. 서방 언론이 심어준 선입견과 달리 현지에서 만난 그들은 순박하고 외국인들에게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따스한 정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카라코람3-4
길기트 시내.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많은 파키스탄 사람과 함께한 하루였다. 10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겨우 차 한 대기 지나갈 정도로 길이 정리됐다. 당초 길기트까지 가려고 했으나, 첩첩산중 절벽 길을 야간에 운전하기에는 위험해 칠라스에서 묵어가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일단 낙석지점을 통과하고 자그마한 도시의 현지식당에 들렀다. 마을로 들어서기 전 검문소에서 총을 가진 근무자 한 명이 우리 차에 타더니, 마을을 벗어날 때까지 동행해 준다고 한다. 외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니 고마웠지만, 그만큼 치안이 불안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동승한 초병과 함께 현지인 식당에 도착하니, 십여 명의 현지인들이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며 담소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우르르 식당으로 들어가니 다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벽촌에 그것도 해가 진 뒤에 남녀 외국인들이 몰려 들어오니 신기했던 모양이다. 종일 제대로 먹지 못해 주린 배를 채우고 다시 칠라스를 향해 출발한다. 동네 어귀를 벗어나니 동승한 경찰은 차에서 내려 컴컴한 길 저편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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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석으로 길이 막혀 10시간 동안 길 위에서 기다린 후에야 통과할 수 있다.

칠라스를 10여 분 앞둔 검문소에서 관련 서류를 제출하는데 한국인이 한 사람 있었다. 비즈니스 비자를 소지하고 이곳에서 무역업을 하는 분인데 길기트·훈자 지역으로의 여행은 관광비자 혹은 별도의 허가가 필요해 통과를 못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를 가이드 해주는 이도 비즈니스비자였다. 결국 관광비자를 받은 우리만 통과를 하고 현지 가이드를 해주던 이는 이슬라마바드로 다시 돌아가 허가증을 받아 사흘 뒤 합류했다.

가이드를 남겨 두고 우리는 칠라스로 향했다. 삼십분 여를 달려 칠라스에 도착하니 그제 아보타바드에서 수인사를 한 현지인이 연락을 받고 나와 있었다. 난감한 때에 미리 안면을 튼 사람이 있어 든든했다. 이슬라마바드로 간 가이드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우리를 안내하기로 했다.

새벽 세 시에 들어간 칠라스의 숙소는 흙벽돌로 만들어진 테이블이며 침대가 아라비안나이트를 연상시킬 만큼 고풍스러운 멋이 있었다. 아침은 차와 토스트로 간단히 하고 길기트로 향했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인더스강을 옆으로 끼고 달린다. 어제와는 달리 도로의 상태가 좋다. 낙석, 비포장 구간을 벗어나서 편하게 드라이브를 즐긴다.

 

카라코람33
우리 일행과 함께 셀카를 찍는 파키스탄 젊은이.

낭가파르밧(8천125m)은 세계에서 9번째로 높은 산이다. 칠라스를 떠나 길기트로 가는 길은 만년설을 이고 있는 파키스탄의 고봉들을 볼 수 있다. 카라코람산맥과 힌두쿠시산맥 그리고 히말라야산맥의 교차점을 라다크에서 발원한 인더스강이 휘돌아 내려간다.

어제의 고생을 까맣게 잊고 길기트공항 옆 호텔에 짐을 풀었다. 도착 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길기트 시내로 나섰다. 인더스강의 원류인 길기트 강가에 위치한 도시인 길기트는 옛날에는 불교의 중심지로 마애불이 유명하다. 오늘날은 파키스탄 변경의 요충지로 인도와의 영토 분쟁이 계속되는 곳으로, 카라코람산맥 등반을 위한 중간 기지이며 K2(8천611m) 등정을 위한 스카르두로 가는 갈림길이다.

국제버스 NATCO(Northern Areas Transport Corporation)는 여름철에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따라 이슬라마바드와 길기트, 소스트를 거쳐 중국의 타슈쿠르간(Tashkurgan), 카슈가르(Kashgar)까지 버스를 운행한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은 봄에서 여름까지이다. 파키스탄항공은 길기트 공항과 이슬라마바드 국제공항을 주 5회에서 7회 비행하는데, 낭가파르밧을 지날 땐 산 정상이 비행 고도보다 더 높아 놀라운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겨울에는 날씨 때문에 결항이 되는 경우가 많고 며칠씩 비행이 취소되기도 한다.

길기트의 현수교
길기트의 현수교

 

시내 구경을 다니며 이곳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자와 스카프 등을 사기도 하고 여유롭게 오후 시간을 보내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파키스탄에 들어서면서 맥주 한 잔 마시지 못하고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우여곡절 끝에 배낭에 몰래 숨겨온 소주를 꺼내어 끓인 라면을 안주 삼아 무사한 여행을 위하여 한 잔씩 했다. 빈병은 혹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다시 배낭 속 깊숙이 넣었다.

여유있는 하루를 보내고 오늘은 훈자로 가는 날. 라호르에서 이곳까지 같이 온 버스는 돌려보내고 길기트에서 소스트까지 함께할 버스로 갈아탔다. 파키스탄의 기사들은 경적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운전한다.

훈자까지는 세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라서 길기트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관광모드로 가기로 했다. 먼저 카르가(Kargah) 마애불을 보러 갔다. 우리나라 경주 남산의 마애불처럼 깎아지른 바위에 부처님을 조각해 놓았다. 여행 중 외국인 관광객을 만나기 어려웠는데, 이곳은 태국 직항이 있어 태국 관광객들을 수차례 만날 수 있었다. 한류의 세례를 받은 젊은이들은 우리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길기트의 '카르가 마애불'
길기트의 '카르가 마애불'

 

 
 

버스를 타고 훈자로 향했다.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점심 때가 되어 라카포시산(Rakaposhi, 7천788m) 베이스캠프로 가는 입구 마을에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이곳은 제법 많은 관광객이 들르는 곳이다. 라카포시산이 하얀 만년설을 이고 눈앞에 펼쳐져 있다. 라카포시란 이름은 현지 언어로 눈이 덮힌 설산을 의미하며, ‘안개의 어머니’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현지식당에 음식을 주문하고 사진을 찍기 위해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 본다. 마을 회관 같은 공터에서 타악기의 두드림 소리가 나길래 그곳으로 향했다. 마을 주민들이 사오십 명이 흥겨운 타악기 가락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도 춤판에 끼었다. 잠시 즐거운 현지인들과의 시간이었다. 식당으로 돌아와 라카포시산이 잘 보이는 야외에서 간단히 점심을 하고는 도로 옆에 막 피어난 꽃들을 보며 훈자로 향했다.

박윤수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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