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수 한 그릇
냉수 한 그릇
  • 승인 2018.08.1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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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새누리교회
담임목사
요즘 같이 무더운 날씨에 ‘냉수 한 그릇’은 무척 기분 좋은 선물일 수 있겠다. ‘냉수 한 그릇’은 오히려 ‘생수 한 병’으로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듯하다. 어찌되었던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이번 여름의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냉수 한 그릇은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청량제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냉수 한 그릇’은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작은 호의를 의미한다.

지난주 교회에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 하리라”는 마태복음 10장 42절의 말씀을 함께 토의한 적이 있었다. 토의의 주제는 최근에 교회로 찾아와 돈을 요구하는 40대 노숙자 한 분이 있는데 ‘우리가 그 분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이 성경 말씀에 가장 합당한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인도자로서 나는 성경에서의 ‘작은 자’는 문맥상 어려움 가운데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작은 자’의 범위를 우리 사회의 소외된 자로 확대하여 한번 토의해 보자고 제안했다.

토의가 시작되자 한 분이 ‘목사님은 지금까지 그 분에게 어떻게 해 오셨는가?’라고 물었다. 나는 대략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요즘 교회들마다 찾아오는 노숙자들이 많아 입장이 난처할 때가 많다. 돈을 많이 준다고 소문이 나면 더 많은 분들이 찾아온다. 그렇다고 사정이 어려운 분들을 도외시 할 수도 없어 대부분 천원이나 이천 원 정도를 준다. 우리도 그렇게 해 보기도 하고 또 간단한 청소를 맡기고 만 원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도 여의치 않아 요즘은 약간의 권면과 함께 오천 원이나 만 원을 주어 보낸다고 했다.

그런 말에 이어 다음과 같은 논의들이 계속되었다. 그 분을 돕기 전에 우선 그의 신상을 자세히 조사해야 한다. 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돕는 것이 좋겠다. 그가 거주하여 훈련받을 수 있는 노숙자 훈련센터 등을 연결해 주자. 무엇보다 우선 그 분을 위해 기도하자. 돈을 줄 때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고 오히려 그를 격려하며 주도록 하자.

여러 논의가 오고 가는 도중에 우리들은 노숙자들에 대한 불편함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뻔히 알기 때문에 그분들과 대화하는 것이 상당히 불편하다는 것이다. 또 여자 분들이 교회에 혼자 있을 때 남자 노숙자들이 찾아오면 두려울 때가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분은 노골적으로 ‘예수님이 작은 자들에게 냉수 한 그릇 주라고 말씀하셨으니 우리도 냉수 한 그릇 주어 보내면 되지 않을까요?’ 하며 불편한 심기를 은근히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매번 찾아와 도와 줄 때까지 앉아 있는 노숙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그날 우리는 우리가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오히려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작은 호의인 ‘냉수 한 그릇’을 주는 것조차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소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가장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줄 수 있는 사랑마저 현재 우리에게 없음을 깨닫게 된 것은 작은 소득이었다. 냉수 한 그릇. 그것은 비록 작지만 더위에 지친 그들의 목을 지금 당장 시원케 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를 찾아오는 노숙자들의 몸과 마음을 지금 당장 위로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우리가 주는 냉수 한 그릇으로 그의 인생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치고 피곤한 그의 삶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도록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냉수 한 그릇은 그에게 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주는 것이다. 인생을 포기하지 말고 함께 살아가자는 무언의 격려를 보내는 것이다. 그의 인생을 바꾸진 못해도 그의 인생을 사라지지 않게 하는 사랑의 묘약일 수 있겠다.

그래서 예수는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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