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잘 들지 않는 숲속에서
라피도포라 라는 식물은 서로의 팔을 꽉 붙들어
나무 둥지를 사정없이 타고 오르다가
가끔씩 아래를 보면서
제 잎이 아랫잎 그늘을 막아 햇빛이 닿지 못할까봐
스스로 제 몸에 구멍을 내어
아래쪽 잎들에게 빛을 나누어 준다
남아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제 몸 뚫어 빛을 수혈하는 것이다
잎들은 살아남아 전체가 푸르름으로 점령된다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나하고는 급이 다르다
◇이필호= 경북 군위 출생
2010년 ‘사람의문학’으로 등단
시집 ‘눈 속에 어린 눈’
<해설> 인간에게만 살신성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식물도 자기희생을 여실히 보여 주는 거룩한 생존이 있다.
하물며 식물도 이러할진대 사람이야 말해 무엇 하랴.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그냥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제왕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