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물
계곡, 물
  • 승인 2018.08.15 20: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복 영진전문대
명예교수 수필가
계곡에는 예상외로 물이 많지 않았다. 물소리를 듣고 발을 담가 볼 요량으로 짬을 냈는데 기대가 허물어진다. 여름 하루 가족과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휴식처는 계곡이 으뜸이다. 계곡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간격을 두고 몇 군데 둑을 만들어 놓은 것이 보인다. 돌과 나무둥치를 새끼로 이리저리 묶어 걸쳐 놓았다. 자연을 살리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소규모 사방공사라는 푯말이 서 있다. 급류에 잡목이나 쓰레기가 내려가지 못하도록 만든 것 같지만 계곡 아래의 전답을 보호하기 위한 공사란 것을 뒤늦게 알았다. 바닥끝이 어딘지 모를 드러나 있는 큰 바위를 가로 질러 움푹 팬 곳에서 물거품을 내며 모았다가 흘려보내는 계곡물 그대로의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쉽다. 곳곳에는 계곡 형세의 들고 낢에 따라 물이 고인 곳도 있고 작은 물줄기가 낙하하는 곳도 있다. 아이들이 작은 폭포라고 할 만한 것이 여러 개 보인다. 군위에 자리하는 동산계곡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생각보다 피서객이 많지 않았다. 오염되고 붐비는 수태골을 피해 이곳으로 오는 피서객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 계곡이 병들면 도시인들은 또 어디로 갈까. 계곡 사방 둔치에는 각양각색의 텐트가 줄을 이었다. 아이들의 청량한 재잘거림이 골짜기에 퍼진다. 그때 경대 뒷산 주위는 온통 논밭이었다. 건물이라곤 원두막이 고작이었다. 잠자리 잡는 일에 매료되어 학교수업을 마치면 다섯 살 아래 조카를 데리고 그곳으로 줄달음쳤다. 논밭 주변에는 어디를 가도 웅덩이가 많았다. 가느다란 줄기에 얹힌 커다란 연잎은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흔들거렸다. 피고 덜 핀 연꽃 사이 진녹색 연잎에는 물 구슬이 햇살을 받아 영롱하다. 야릇한 모양새로 암수 컷이 한데 꼬인 눈 큰 잠자리는 물 주위를 빙빙 돌다가 언제나 앉는 자리는 연잎이다. 바람에 미동하는 연잎 위에서 벌이는 사랑놀이가 좋은가 보다. 잠자리를 잡기 위해 웅덩이에 들어갔다가 죽을 뻔한 기억이 있다. 둥근 철사 태에 실로 엮어 만든 잠자리채를 들고 살며시 웅덩이에 발을 내렸더니 이게 웬일인가. 발이 푹 빠진다. 뻘에 갇힌 발을 빼내기도 힘들었고 몸이 자꾸 물 안쪽으로 빠져 들어갔다. 팔을 내저으며 허우적거리니 철없는 조카는 손뼉까지 치면서 웃고 야단이다. 일찍 세상을 등진 순둥이 조카 생각이 날 때가 가끔 있다. 점을 치고 온 어머니는 “물 가까이 가지 말라”는 당부를 몇 번씩이나 했다. 그래선지 나는 지금도 물이 겁난다. 너른 바위에 앉아 갑작스레 소나기가 퍼 부으면 산허리 상류에서 물이 쏟아질 것이라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계곡 사이사이 띄엄띄엄 보이는 이끼 실은 돌과 고인 물에 어지럽게 떠 있는 부유물을 보면서 큰 물로 계곡이 말끔히 씻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쉬다 내리는 잔비에도 물놀이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즐거운 모습이다. 계곡 아래로 내려가 본다. 숲가 이곳저곳에 깡통, 수박껍데기, 비닐 등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다. 하루살이 같은 날벌레가 어지럽게 위 아래로 오르내린다. 생활여건은 좋아 지고 있는데 도덕 불감증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네들을 보면서 마음이 언짢다. 여름 계곡은 도시민들의 숨구멍이다. 미세먼지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어른들과 아토피에 답답해하는 아이들에게는 계곡놀이가 청량제다. 물이 있어야 할 계곡이 메말라 있으면 정말 보기 싫다.

지방시대, 도시 근교의 지방자치단체장은 자연이 준 선물을 치곡치수(治谷治水)하여 도시민들을 유인하는 방책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아이들을 데리고 계곡을 찾는 피서객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도로 호강에 겨워선지 남의 일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요즘 사람들은 하루 종일 차가 몇 대 안 다닐 것 같은 심산유곡(深山幽谷) 어디를 가도 말끔히 포장된 도로를 보고는 “지역 수장의 과욕”이라고 한마디씩 툭 던진다. 나무랄 수 없는 말이다. 큰 돈이 생기는 일은 아니겠지만 잘 관리된 계곡은 지역 방문객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 줄 것이다.

산이 있고 골짜기에 물이 있어야 계곡이다. 요산요수(樂山樂水)란 말이 있지 않은가. 물 튀김과 흐르는 물소리가 반주하는 계곡은 언제나 마음을 평온하게 해 준다. 나는 여름 계곡이 좋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