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동 작가, 열쇠 형태 합판 레이어에 담아낸 사회구조
김규동 작가, 열쇠 형태 합판 레이어에 담아낸 사회구조
  • 서영옥
  • 승인 2018.08.21 2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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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회로도에서 착안한 열쇠
미묘하게 얽힌 사회구조 같아
방향 바꾸면 총처럼 보이기도
3~5중으로 쌓은 합판 코팅
펄 물감으로 금속 느낌 강조
작품1
김규동 작.


서영옥이 만난 작가


“암암리에 쌓이고 축적되어 있던 찌꺼기들을 모두 버렸습니다. 점·선·면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버리고 나니 구조만 남더군요.” 작가 김규동의 말이다. 그의 작업이해를 돕는 핵심적인 말이 아닐까 한다.

8월 첫째 날, 경북 청도군의 너른 산야를 끼고돌아 고즈넉한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 작업실이자 거처인 그의 집 마당에 도착하니 앞으로는 연못이 내려다보이고 뒤로는 오죽이 울창하다. 배산임수의 지세를 갖춘 그곳에도 더위는 기승을 부렸다. 미소가 곱던 아내가 반겨준 거처는 김규동 작가가 직접 솜씨를 발휘하여 지은 집이라 하였다. 갓 구운 빵과 손수 만든 인디핑크색 비트 차가 남편을 향한 아내의 사랑만큼이나 진하게 우러나던 공간. 그의 8번째 개인전이 열리던 전시장 더 블루(Gallery The Blue-대구)에서 첫 대면(5월 31일)을 하였으니 이번이 두 번째 인터뷰인 셈이다.

마당 가장자리에 줄지어선 철골 조상들만 보면 김규동은 영락없는 조각가이다. 탁월한 용접기술에 건축업을 겸한 동화일러스트 작가였던 김규동은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김규동의 손을 거치면 대체로 자연스럽다. 지난 5월 ‘더 블루’에 전시된 ‘열쇠’ 시리즈도 같은 맥락이다. 자칫 미니멀리즘이나 하드 에지(Hard-Edge)를 추구하는 작가라라고 속단할 뻔 했다. 195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기하학적 추상화인 하드 엣지는 당시 미국화단을 지배하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작품들이다. 표면만 보면 김규동의 작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방식이다.

작품2
김규동 작.


김규동의 현재작업은 합판을 중첩한 변상적 레이어 조형물이다. 벽면에 부착할 수 있을 만큼 평평한 뒷면에 3~5중으로 덧대어진 합판이 두께를 더하여 볼륨감을 유지한다. 정교하게 절단되어 재조립한 열쇠(돌려보면 총으로도 보이는) 이미지는 전자회로도에서 착안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구조가 미묘하게 얽힌 전자회로도를 닮았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변상적 레이어도 같은 맥락이다. 그라데이션 된 무지개 색처럼 색과 색 간에는 무수한 색의 층차가 존재한다. 인지할 수 있을 만큼 두드러진 색이 있는가 하면 미처 감지하기도 전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색도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다르지 않다. 열쇠 이미지로 대표되는 김규동의 작품은 음과 양, 장단고저가 공존하는 세상에 대한 예술적 변형이다.

감정과 감성마저 차단된 듯한 매끈한 표면의 재료는 나무이다. 합판과 압축보드를 직소기로 커팅한 후 표면을 센딩하고 마감은 크리스탈 바니쉬로 10회 이상 코팅 처리한 것이다. 펄이 들어간 아크릴 물감으로 도색하여 마치 금속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재료의 운용에도 작가의 작업 의도는 숨어있다. 유화물감은 가라앉았다가 우러나는 특성이 있지만 아크릴물감은 뜨는 속성을 지녔음을 이용한 작업인 것이다. 작품읽기에 앞서 작업 과정을 살펴볼 이유였다.

 
작품3
김규동 작.



그의 집 거실 벽에 걸린 세 점의 평면작업에 시선이 먼저 가 닿았다. ‘꽃의 변형’이라는 제목을 단 작품들은 꽃 모양에 사회구조를 대입한 것이다. ‘꽃의 변형’ 제작 동기는 김규동이 군대에서 제대할 무렵에 목격한 민주화운동이 기원이다. 현재진행 중인 ‘열쇠’ 시리즈 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1987년 직선제 개헌과 민주헌법 제정 등의 시국 수습 방안으로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한 6.29선언이 작가에게는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시국에 민감하던 20대 청년 김규동은 더욱 냉철하게 사회변화를 주시하며 사회의 어두운 곳에 주목하였다. 예술가의 현실참여였던 것이다. 20평 남짓한 2층 작업실 바닥과 벽면을 가득 메운 ‘열쇠’ 시리즈는 곧 우리의 현실이자 김규동의 현재를 담고 있다.

실익이 없는 작업은 그 후로도 꾸준했다. 침묵의 카르텔이 횡횡하는 세상에서 작가는 작업으로 세상을 소생시키려하지만 한계는 늘 있다. 깊숙이 다룰 수는 없는 영역의 특성상 찬란했던 예술의지의 초발심은 빛을 바래기도 한다. 7~8년 전 어느 날 작업에서 감정을 없앤 이유이다. 마음이 편한 대신 몸이 고달픈 쪽을 택한 것이다. 시종일간 수작업으로 마무리하는 작품도 감정 대신 노동을 택한 결과이다. “따라 하기 싫어서 없애고 제거하다보니 더불어 감정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전보다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요.” 분해하고 조립한 것에 쇠 소리(노이즈)를 삽입하여 공감각적인 예술언어로 완성도를 높여가는 김규동의 작업은 예술로써 세상과 자신의 한계를 넘고자하는 도전 다름 아니다. 비교대상은 밖이 아닌 자기 자신 안에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바로 현재의 ‘키(Key)’ 작업의 탄생 배경이다.

동세가 제거된 그의 열쇠는 경직되었다. 경직된 표현만 보면 눈 호강을 시킬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작가에게 내재된 상상의 폭과 깊이를 속단하기는 이르다. 이를테면 열쇠를 총으로 보는 역발상적 상상 같은 것이다. 간간이 점들이 열쇠 위에서 피어나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내린다. 군락을 이룬 점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점· 선· 면과 관계하며 새로운 조형을 탐색한다. 겸손하게도 심오한 철학을 담을 형편은 못되지만 작은 재주를 사회에 바치고 싶다고 하는 작가는 존중받아야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꿈꾼다. 김규동은 총이 아닌 열쇠를 통해 현실에서 통용되는 정당한 말을 재생산 해내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빈약한 스팩에 비해 손 놓지 않은 작업에 대한 자부심이 큰 작가 김규동의 작업세계에 대한 소회이다.

 

작가-1
 

김규동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갤러리 더블루 ‘The key’전, 봉산문화회관 ‘감염과 저항’전 등 다수의 개인전 개최, 서울 리수갤러리 개관기념전, 서울 코엑스 PLAS 2017조형아트전 등 다수의 단체전 참여

 

서영옥 ㆍ미술학박사 shunna9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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