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대가(大家)의 품격(品格)
[문화칼럼] 대가(大家)의 품격(品格)
  • 승인 2018.08.2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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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1950~60년대는 오페라의 황금시대라 부른다. 이 시기에는 지금의 세계적 성악가들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전설적 성악가들이 즐비했다. 그 중심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테너들이 있었다. 디 스테파노, 델 모나코, 코렐리 등과 함께 쟌니 라이몬디(Gianni Raimondi)도 황금시대의 주역 이었다. 라이몬디는 이들에 비해 명성은 조금 떨어졌지만 오페라 팬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테너였다. 그의 목소리는 무대에서 정말 잘 들리는, 소위 ‘달리는 소리’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특별함을 나타내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일 도 디 –Š또(Il do di Petto-두성만이 아닌 가슴으로 Hi-C를 낸다는 뜻)는 그의 음반 쟈켓 타이틀로도 쓰였던 라이몬디를 상징하는 말이다.

오래 전 나의 이탈리아 유학 생활 초반, 이 세계적 테너를 만나기 위해 나는 밀라노 집을 나서서 볼로냐로 향했다. 당시 차가 없던 나는 기차를 이용했다. 그리고 볼로냐 역에서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그의 집에 갈 수 있었다.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 주(州)의 시골, 야트막한 구릉지대 위의 하얀 대저택이 그의 집이었다. 당시 막 70대에 접어든 노(老) 대가는 다정하고 친절했으며 활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아직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가진 그와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집으로 가야할 시간이 되었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하고 말도 서툰 내가 걱정되었는지 마에스트로는 역으로 바로 갈 수 있는 버스종점까지 태워다 줬다. 그리고 버스기사에게 역에 도착하면 나를 잘 내려주라는 부탁까지 하곤 시가를 입에 물고 정류장에 서서 기다린다. 버스가 한참이나 있다가 출발하자 그제서야 그는 손을 흔들어주며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미 그 당시 오페라 무대에서 은퇴한지 오래되어 (그는 60대 초반에 목소리의 문제가 아닌 극장의 먼지 알러지 때문에 은퇴 했단다. 참고로 유럽의 유서 깊은 오페라 극장은 먼지가 엄청나다) 수많은 성악도들이 그를 찾아 왔을 텐데, 그 많은 사람 중 보잘 것 없는 한 사람인 나를 위해 베푼 그의 따뜻하고 사려 깊은 행동에 깊이 감동했다. 당대의 위대한 테너의 한 사람이었던 그가 보여준 친절에서 대가의 넉넉한 품격을 볼 수 있었다.

며칠 전 대구 오페라 하우스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현존하는 최고의 성악가 중 한명인 베이스 연광철의 마스터 클래스가 그것이다. 이날 음악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 따뜻하고 흔들림 없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연광철의 예술적 성과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특히나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서 자라 청주대 음악교육과를 거쳐 불가리아, 독일에서 유학 그리고 세계무대에서 거둔 그의 성공은 대단히 드라마틱하다. 그는 ‘늘 2인자의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시골 출신, 유럽에서는 동양인. 하지만 이런 핸디캡을 극복하고 그는 정상에 섰다. 그의 내면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면 이런 약점이 그의 성공을 가로 막을 수 없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는 겸손하고 작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자신의 무대를 정복해 나갈 수 있었다고 본다. ‘청주대학에 다닐 때 재수해서라도 서울로 가라는 말에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 세계최고의 무대 ’메트‘나 ’스칼라‘에서 노래하는 것, 그런 큰 무대 에서 노래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농부처럼 욕심내지 않고, 단역을 맡더라도 기쁘게 노래하는 작은 마음이 이어지며 지금까지 왔다고 했다. 바깥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이런 단단한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었기에 그는 특별한 음악가로 다가온다. 심지어 서울대학교 교수직에도 연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서신을 주고 받아본 사람은 안다. 그가 얼마나 세련되고 정중하게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지를…. 정상의 음악가가 거의 조건 없이 후배들을 위한 가르침의 시간을 내기는 정말 쉽지 않다. 더구나 이미 몇 해 전부터 이 작업을 해오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는 그가 얼마나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날 그가 학생들에게 음악적으로 가르침을 준 것은 기본에 충실 하라는 것이었다. 앞서 말한 쟌니 라이몬디 선생도 첫 만남에서 중요한 것을 다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 소중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또 어딘가를 헤메고 다닌 것은 아니었는지…. 이미 방법은 알고 있는데, 그것을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데 그 시간을 못 견디고 떠돌아다닌 것은 아니었던가. 바람에 일렁이는 나무를 쳐다볼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내 마음을 예술가는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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