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물 한 바가지
똥물 한 바가지
  • 승인 2018.08.2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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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전밭에 채소들은 주인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던가요 산비탈 밭에는 행여나 올까 날마다 나를 기다리는 눈빛들이 자라고 있다 바람이 지나는 소리에도 귀 쫑긋거리며 무슨 냄새라도 맡으려 킁킁거리며 배고픈 얼굴로 기다리는 고양이새끼들 같기도 하고 강아지새끼들 같은 그것들이 기다리는 것들은 똥물 한 바가지



사실 나에게는 없는, 이미 몸을 빠져나가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버린 아쉬운 것들, 미안함에 밭에 갈 적마다 빈손으로 가기 뭐해서 참고 참았다가 슬며시 바지춤을 내리기도 한다 주위를 살피고 인기척을 확인한 다음 듣는 시원한 낙수소리는 서로에게 즐거운 소나기가 되기도 한다 가끔은 공중화장실의 똥오줌을 훔쳐오고 싶기도 하다 생각 없이 버리는 것들 소중히 받아와서 정성껏 나눠주고 싶다 젖 물리듯 실컷 똥과 오줌 빨아먹은 것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누군가에게 초록빛 싱싱한 기쁨과 보람으로 되돌려 줄 것이다



나도 누군가의 똥물 한 바가지 오지게 받아먹고 몸속에 푸른 피를 가지고 싶다 옛날처럼 내게 똥물 퍼부어줄 할배도 없고 아부지도 없다 누가 내게 똥물 한바가지 시원하게 퍼부어 주면 좋겠다 푸른 잎을 매달고 싶은 몸이 간지럽다



◇전인식=경북 경주 출생. 1997년 대구일보 신춘문예 시, 1998년  불교문예로 등단.




<해설> 식물도 주인의 정성에 따라서 자란다고 한다. 발걸음소리에 활기가 넘치기도 한다. 그냥 바람에 실려 제 몸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고마움을 표시하듯 몸을 흔드는 것이다.

진정한 농사꾼이라면 식물들의 배고픔과 아픔소리를 직감적으로 느껴야 한다. 게다가 작목들도 제 나름의 기쁨과 고통을 드러낸다. 잎이나 줄기 또는 냄새에서…. 토마토 옆에 서면 토마토 향이 나고 들깨 또한 그들만의 향기를 낸다. 그건 자신을 드러내는 표시가 분명하다. 그들만의 독특한 향기에서 식물들의 희로애략 분노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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