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엔 동네가 없다
도로명 주소엔 동네가 없다
  • 승인 2018.08.2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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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공동대
“기사님 서대구로 66길 28호 좀 가 주세요. 무슨 동인지… 근처 큰 건물 알아요? 저도 초행입니다. 네비로 확인해 보세요. 그게 번거로와서…”

최근 지역의 작은도서관 모니터링을 위해 택시를 타면서 여러 번 겪었던 일이다.

보수적인 대구라서 특별히 그런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도로명 주소에 대한 수용성은 낮다.

신문을 보더라도 ‘대구 수성구 만촌동 883-38 일원 아파트 신축 공사에 따른 도로 폐쇄 예정에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자…’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26일 오후 7시쯤 수성구 시지동 길가에 세워져 있던 배달전문업체 오토바이에서…’ 식으로 장소를 특정하여 나타낼 땐 아예 도로명주소를 사용하지 않는다.

주소는 사람의 실질적인 생활의 근거가 되는 곳을 행정구역에 근거해 위치를 나타내는 준공간데이터이며 공동체의 기반이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지명은 단순한 기호(記號)가 아니다. 지명 속에 우리의 역사가 있다. 지명이 사라진다는 것은 개인의 정체성만 아니라 동네의 사회·문화·역사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국민의 생활안전과 편의를 도모하고 물류비 절감 등 국가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도로명주소법 제1조)는 도로명주소는 위치찾기의 편리성과 국제적인 표준을 목적으로 도입하였으나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행정동· 법정동의 차이와 함께 여전히 내가 사는 곳의 명칭이 헷갈리는 정책이다. 택배 배송원들이나 우체국 집배원들도 불편을 호소한다.

귀농자의 경우 “도로명 주소는 그냥 숫자이지 그 정보로는 동네를 알 수가 없어. 면단위, 리단위 나온 후에 건물주소가 필요하지. 동네, 마을은 사라지고 도로만 있어”라며 지방자치 시대에 역행하는, 중앙정부의 일률적인 도로명 주소 정책의 엇박자를 비판한다.

연구결과를 보더라도 현재 도로명주소가 시행되어 사용되고 있지만 서울특별시, 세종자치시, 경기도 등 여러 지역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도로명주소 인지 및 사용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도로명주소에 대한 이해력과 사용도가 미비하다.

지난 김영삼 정부 시절 서울 강남구에서 시범사업을 한 이후 2006년 도로명 주소 등 표기에 관한 법률제정을 공포하고, 2011년 도로명 주소를 고시한 이후 2014년부터 전면 시행되고 있는 도로명 주소는 여전히 지번주소 없이는 일상에서 홀로서지 못하고 있다. 도로명 주소 끝에 참고항목으로, 괄호를 이용하여 동을 표기하여 겨우 위치를 가늠하고 있다. 더불어 주소 사용의 이원화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2015년부터 수백명의 도로명주소 서포터즈를 구성,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직접적 교육활동, 언론기고, 인터넷 홍보, 안내시설 훼손신고, 주소 바로쓰기 활동, 캠페인 등을 벌여왔으며 업무 유공자 포상도 진행하고 있다.

2013년 6월 농협대 교수, 문화부장관, 대한불교청년회 등은 전통문화의 계승 의무 등과 관련, 새도로명 주소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하였으나 기각되었다.

“각 지역의 지명은 오랜 기간 동안 면면이 이어져온 그 지역만의 문화적 전통과 역사적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있어 타 지역과 구별되는 그 지역만의 고유한 색채와 깊이를 드러내며, 그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로 하여금 지역에 대한 애착심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이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이러한 특색을 모조리 탈색해버린 도로명주소법은 국민의 이 같은 문화향유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마을이 사라지는 도로명 주소에 맞서 마을 공동체를 어떻게 지켜내야 할까? 주소는 나의 위치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기호가 아닌가. 받아들이기 힘든 낯선 도로명을 무시할 수도 수용할 수도 없는 상황 아닌가.

전통마을명은 사라지고 1개 마을이 3개 이상의 도로명으로 나누어지는 새주소 정책에 행정의 기초단위인 행정리가 사라지고 있다.

마을 공동체의 정체성이 도로로 나앉고, 마을단위 자치기구가 나눠지고 소멸되는 도로명 주소의 문제를 지역에서 의제로 삼자.

사회적으로 충분한 합의 없이, 인터넷과 네비게이션이 보편화되어 산꼭대기에 있는 절도 찾아주는 IT 강국에서는 기술적 추세에 대한 안목 없이, 촌락이 발달한 우리 지역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공동체에 의한 자치분권시대를 역행하는 도로명 주소를 바꾸자는 국민청원에 힘을 보태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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