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을 상징하는 새 - 모든 것이 다 우리를 가르친다
오륜을 상징하는 새 - 모든 것이 다 우리를 가르친다
  • 승인 2018.08.23 21: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지금도 유용한지는 모르겠으나 필자가 어렸을 때에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는?’이라는 난센스 퀴즈가 있었습니다. 답은 ‘눈 깜작할 새’였습니다.

눈을 한 번 깜박일 사이에 다 움직였다고 하니 얼마나 빠릅니까? 이때의 ‘새’는 날아다니는 새가 아닌 ‘사이(間)’의 준말로써 시간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이(間)’라는 말이 ‘새(鳥)’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옛사람들은 새(鳥)가 하늘과 땅 사이(間)에서 메신저역할을 했다고 보았으니까요.

그럼 메신저로서 새는 하늘의 어떠한 뜻을 지상에 전달하였을까요?

중국 여행 중 한 미술관에서 새 그림인데도 <오륜도(五倫圖)>라는 화제( 題)가 붙어있어서 유심히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다.

그림 속에 들어있는 새는 학(鶴), 금계(錦鷄), 원앙(鴛鴦), 공작(孔雀), 제비(燕) 등 다섯 종류였습니다. 이 다섯 새와 오륜(五倫)과는 어떤 관계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이리저리 찾아보았더니 학(鶴)은 부자유친(父子有親)의 상징이 되고 있었습니다. 이는 <주역(周易)>에 “우는 학은 그늘에 있고 그 새끼가 화답한다(鶴鳴在陰 其子和之).”라는 구절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어미 학이 산기슭에서 울면 새끼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화답해서 운다.’라는 해설에서 그 의도를 더욱 명확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금계(錦鷄)는 금계(金鷄) 또는 준의( )라고도 합니다. 준의의 ‘의( )’에 ‘의(義)’자가 들어가기 때문에 군신유의(君臣有義)에 연결되었다고 합니다.

원앙(鴛鴦)은 한 번 짝이 되면 결코 그 짝을 바꾸지 않는다 하여 금슬 좋은 부부를 상징합니다. 그러니 부부유별(夫婦有別)과 연결되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공작(孔雀)은 장유유서(長幼有序)를 상징합니다. 공작은 높은 곳을 오를 적에 반드시 왼발을 먼저 든다고 합니다. 공작은 발 하나를 드는 데에도 차례(序)를 지키므로, 이에 장유유서를 붙였던 것입니다.

제비(燕)는 붕우유신(朋友有信)을 나타냅니다. 주인이 아무리 가난해도 강남 갔던 제비는 용케 제 살던 옛 둥지를 잊지 않고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옛 정의(情誼)를 결코 잊지 않으므로 믿음이 깊은 새로 보았던 것입니다.

옛사람들은 이러한 오륜(五倫)을 가슴깊이 새기고자 그림으로도 많이 남겼습니다. 송나라 휘종(1082~1135) 임금이 직접 그린 <부용금계도(芙蓉錦鷄圖)>에는 아주 독특한 필치로 오언절구가 한 수 적혀 있습니다.

秋勁拒霜盛 깊은 가을 매운 서리 막아 지키니

( )冠錦羽鷄 우뚝한 관을 쓴 금계로구나

已知全五德 오덕을 다 갖춘 줄 내 이미 아니

安逸勝鳧( ) 그 편안함 오리 갈매기보다 한결 낫도다

이 시에서 오덕(五德)을 다 갖추었다 함은 깃털 속에 오방색(五方色)을 두루 갖춘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오방색은 다섯 방위를 가리키는 색으로 동쪽은 청색(靑色), 서쪽은 흰색(白色), 남쪽은 붉은색(赤色), 북쪽은 검은색(黑色), 가운데에는 황색(黃色)으로서 갖추어야 할 것은 모두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구한말 문장가 최영년(崔永年)은 금계의 울음소리를 묘사하면서 ‘봉황불여아(鳳凰不如我)’로 표현하였습니다. ‘봉황이 제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나만은 못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선비로서 자신에 대한 깊은 자부심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새를 통해서도 배워야 할 것은 이처럼 무궁합니다. 사물에 대한 깊은 통찰 없이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오륜과 새를 이처럼 연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만물(萬物)이 양아(養我)라.’ 이 세상 모든 사물이 다 나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두가 다 우리들의 스승입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