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 마을 품은 만년 설산…한 폭의 그림인 듯
무채색 마을 품은 만년 설산…한 폭의 그림인 듯
  • 박윤수
  • 승인 2018.08.23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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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코람 하이웨이 소스트, 쿤자랍 패스
훈자강 양안 잇는 후세이니 현수교
발판 간격 듬성듬성…골바람 ‘아찔’
매년 녹고있는 바투라 빙하 아쉬워
중국과 국경교역 중심지인 소스트
나란히 늘어선 포플라나무 ‘장관’
심산유곡 돌고 돌아 쿤자랍 패스로
길따라세계로3
국경마을 소스트 풍경.
 
 


박윤수의 길따라 세계로 -카라코람 하이웨이<5>


훈자에서의 일주일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특별히 무얼 했다는 기억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그냥 시간이 흘렀나 보다.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할 때가 되어 짐을 꾸려 길을 나선다.

며칠간 정들었던 엠버시 호텔을 나와 카라코람하이웨이를 따라 북동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나무 하나 없는 깊은 계곡을 달린다. 도로상태는 중국과 가까워질수록 관리가 잘 되어있다.

한 시간쯤 길을 달려 아따바드호수(Attabad Lake)에 도착했다. 훈자강을 따라 높은 산 사이의 허리춤을 잘라 개설한 카라코람하이웨이는 낙석과 산사태가 자주 발생한다. 이곳 호수는 2010년 4월 산사태로 훈자강을 막은 언색호로서, 유역의 많은 부락이 침수하게 되었다고 한다. 곧 아따바드호수의 둑을 열어 수위를 낮추는 작업을 할 거라고 한다. 두 개의 터널 사이에 있는 호수의 전망대에는 중국과 파키스탄의 우의를 기념하여 도로를 개설했다는 친선문구가 걸려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글자 그대로 두 나라의 우의를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국경에서 본 중국인의 태도는 전혀 달랐다.

길따라세계로-호수
아따바드 호수.


무채색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여행잡지 론리플래닛의 표지를 장식했다는 파수 피크(Passu Peak)는 허리부터 구름을 덮어쓰고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봄이라서 아직 초록색은 마을 근교에서나 볼 수 있고, 이곳의 산들은 회색과 검은색이 섞인 무채색이다. 길가 한켠에 차를 세우고 후세이니 현수교(Hussaini Suspension Bridge)로 가 본다. 200m는 넘는듯한 훈자강의 양안을 이어주는 후세이니 현수교는 다리의 발판 간격이 30cm 정도로 듬성듬성하다. 저 멀리 파수 피크에서 내려오는 골바람은 다리를 건너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이고, 모자는 잡지 않으면 날아 갈듯 불어온다. 몇 걸음 난간을 잡고 다리 위를 걸어가다가 이내 포기하고 돌아섰다.

조금 떨어져서 포커스를 맞춰본다. 한 폭의 그림 같다. 갈수기라서인지 검은 모래톱 사이로 실개천처럼 물줄기가 흐르고, 먼 곳의 산들은 구름 속에 반쯤 덮여 있다. 눈앞의 산들은 먹으로 그린 것처럼 짙은 회색빛으로 자리하고 있다.

진눈깨비가 세찬 바람과 함께 얼굴을 때린다. 서둘러 다음 목적지로 간다. 보리스 호수(Borith Lake) 마을은 도로에서 비포장 길을 지그재그로 30여분 올라 등성 너머에 있었다. 언덕을 넘어 마을로 들어서니 아름다운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염호라고 한다. 융기된 고원지대의 호수들은 수분의 유입보다 증발량이 많아서 소금기를 다량 함유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듯하다.

호수를 지나자 돌과 흙으로 지어진 서너 채의 집과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살구꽃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과 진눈깨비와 함께 꽃비가 내린다. 우리의 시끄러운 소리에 집에서 사람이 나와 인사를 한다. 살구꽃을 뒤로 한 채 세계에서 5번째로 길다는 바투라(Batura) 빙하를 보기 위해 간이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날카로운 경사면을 조심스레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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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자랍 고개 정상의 중국 검문소.


눈앞에 보이는 빙하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빙하를 보며 저마다 기념사진을 찍을 때 100여m 전방에 바위 사이로 아이벡스(ibex, 소과의 야생동물)가 보인다. 바위틈새 나온 풀들을 뜯고 있었다. 모두들 조용히 손짓하며 사진을 찍었다. 빙하와 야생 아이벡스, 어울리는 자연의 선물이었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오지를 다닌다.

어느덧 점심시간, 길을 내려와 파수로 이동했다. 한적한 시골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는지 물어본다. 관광객들이 거의 없는 곳이어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가 수월하지 않다. 다행히 식사 준비가 된다고 하더니, 주문을 받고 나서 뒤꼍에 있는 닭들을 잡기 시작한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진눈깨비가 조금 잦아들어 동네 구경을 나섰다. 들에도 사람이 없는 고적한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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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자강에 걸려 있는 후세이니 현수교.


금방 잡아 조리한 닭고기는 맛있었다. 허겁지겁 점심을 마치고 소스트(Sost)를 향하여 고도를 높인다. 도로 중간중간 빙하의 끝자락이 보인다. 어떤 곳은 빙하수가 넘쳐 도로를 덮치기도 한다. 본격적으로 진눈깨비가 내린다. 소스트를 향해 올라가는 길 양편에는 연분홍의 살구꽃이 만개하고 있었다. 바투라 빙하의 끝단에 서서 빙하수의 흐느낌을 느낀다. 매년 빙하의 녹는 속도가 빨라져 빙하가 후퇴하고 있다고 한다.

오후 4시경 국경 마을 소스트에 도착해서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우리 일행과 5일을 같이한 승합 버스는 우리를 내려주고 길기트로 돌아갔다. 우리는 이곳에서 중국과 파키스탄을 운행하는 국경버스를 타고 쿤자랍고개를 넘어 중국의 국경도시인 타쉬쿠르간으로 간다. 나트코(NATCO, Northern Areas Transport Corporation)라고 불리는 국경버스는 여름철에만 이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따라 운행한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길기트, 소스트를 거쳐 중국의 타쉬쿠르간(Tashkurgan), 카슈가르(Kashgar)까지 간다.

변방지역이지만 숙소는 깨끗하게 정돈돼있었다. 다만 난방시설이 없는지 각 방마다 LPG라인을 연결하여 난로를 틀어준다. 중국과의 국경교역중심지이다 보니 중국 자본이 들어와 최소한의 인프라는 유지되는 듯했다.

저녁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동네를 둘러 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우리가 묵는 숙소는 소스트 중심가에서 가까운 높은 언덕에 위치하여 한눈에 소스트 마을들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소스트는 강을 낀 작은 분지를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산간마을의 전형이다. 무채색의 마을에는 분홍 살구꽃이 피어 있고 검은 산은 하얀 눈을 이고 있다. 이제 새잎이 나오기 시작하는 키 큰 포플라나무들이 열병식을 하듯 줄지어 선 모습은 그림 속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쌀쌀한 날씨에 가스불을 피워 방안을 덮이고 포근한 담요 아래 몸을 뉘어 잠을 청했다. 꿈 같은 파키스탄의 풍광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케이투(K2)든 라카포시(Rakaposh) 트레킹이든 빙하 위를 걸어 대자연의 품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국경출입국사무소는 9시에 열린다고 한다. 8시경 예약한 국경 버스를 불러 호텔에서 짐을 실었다. 수시로 내려 짐 검사를 해야 하기에 승합차 위 캐리어에 짐을 올렸다. 출입국사무소가 있는 길에 도착하여 일행들이 가지고 있던 파키스탄 루피를 모두 사용하기로 한다. 열 시간 이상이 걸리는 국경 통과시간 동안 음식을 구매할 곳이 없다고 하여 물과 간식 등을 사서 싣고, 그래도 남은 잔돈은 소소한 기념품을 사기도 했다. 낙타 털로 만든 양말이 있어 100루피(1,000원)를 주고 샀는데 ‘메이드 인 차이나’다. 이곳의 거의 모든 공산품은 중국에서 온다고 하며, 상권 또한 중국인들 손아귀에 있다고 한다.

9시부터 출국 수속을 시작하여 짐 검사와 출국심사를 마치는데 약 한 시간쯤 걸렸다.

출국심사를 마치고 승합차에 승차한 우리는 이제 국경인 쿤자랍 패스를 향해 심산유곡을 굽이굽이 돌며 고도를 높여갔다. 삼십 분쯤 지나 검문소가 보인다. 국경검문소가 아닌 쿤자랍국립공원 입장료(외국인 8$, 파키스탄인 100루피)를 징수하는 곳이었다. 우리 일행은 입장료를 내고 인적 사항을 기입하고 다시 출발했다. 봄철 낙석이 도로에 많이 떨어져 있어 곡예 운전을 하며 아흔아홉 구비가 아닌 수백 구비를 돌아 국경을 향한다.

드디어 쿤자랍고개 정상 삭막한 고갯마루에 커다란 중국의 검문소가 보인다. 삭막하고 휑한 고개에 서서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고 가야 할 길을 본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팔을 벌려 한 바퀴, 또 한 바퀴 제자리서 돌아본다. 따가운 햇살 아래 하얀 눈이 덮여 있는 쿤자랍고개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국경이다. 남비 볼리비아와 칠레의 국경은 4천m의 알티플라노(Altiplano) 고원에 서너평이 됨직한 흙벽돌 집에서 출국세를 받고 칠레 국경버스로 갈아타서 한 시간쯤 내려간 아타카마(2천500m)에 칠레의 출입국사무소가 있었는데, 중국은 4천600m에 검색대, 그리고 타쉬쿠르간(3천200m)에 출입국사무소가 있다.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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