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지벽(和氏之璧)의 고사를 떠올리다
화씨지벽(和氏之璧)의 고사를 떠올리다
  • 승인 2018.08.2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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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대경영상의학과 원장


문재인 케어로 먹구름 가득한 의료 현장에 폭력 사태가 잇달아 반복되면서 의료계의 시름이 깊다. 도대체 왜 이런 악재가 연달아 터지는지 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당혹스럽기만 하다.

뒤돌아보면 2000년 의약분업으로 인한 파업 이후 의료 정책의 혼선과 의료계 홀대는 도를 넘었다. 한국 의료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의료대란은 대한민국 최초라는 기록을 남기고 역사의 뒷길로 퇴장했지만 그 파장은 오랜 시공을 넘어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정책 실패의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틈만 나면 의료계를 돈만 아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해온 정부와 자극적인 가십거리에 치중한 일부 언론의 선동 때문에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감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또 잘못된 의료 정책과 과도한 규제의 결과로 병의원의 경영은 악화 일로를 치닫는데 오히려 과잉진료와 부당청구로 자기 배만 불리는 악덕 상인의 이미지가 상식으로 굳어 버렸다. 의사가 되기 위해 쏟아 부은 노력의 대가에는 인색하고 의료의 공공성을 내세워 의무만 강조하는 사회주의적 분위기가 고착화 되어 생기를 잃은 자포자기의 모습이 현재 대한민국 의사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정부, 언론, 시민단체, 국민들 모두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의료는 의료 외에 그 어떤 것으로도 대치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의사의 역할을 치과의사가, 한의사가, 약사가, 간호사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의사의 가치와 자존심을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그 피해를 자신들이 돌려받는 역설에 빠지게 된다. 의사를 믿지 못해 여기 저기 닥터 쇼핑을 해야 하고, 믿을 수 있는 친구나 친인척 의사를 찾아다닌다고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며 의료 사각지대의 그늘에서 불신과 불안에 떨며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의사들이 파업까지 불사하면서 지키고자 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높은 수가인상률이 아니라, 의사의 자존심, 그리고 정부의 이간질로 잃어버린 국민들의 의사에 대한 신뢰이다. 지금 의료계는 수많은 시기와 편견 그리고 악의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의사의 비리는 사회면 단골 톱기사가 된지 오래 되었고, 타 직역 단체와 갈등이 발생하면 내용에 상관없이 100대 1, 아니 그 이상의 적들과 싸워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왜곡된 의료 환경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먼저 만신창이가 된 의사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 의사의 권위가 인정되고 의사의 자존심이 바로 서는 의료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의사는 단순히 경제적 수단으로서의 직업이 아닌, 생명을 지키는 사명을 부여 받은 특별한 직업이다. 의사로서의 자존심은 단순히 금전적인 것이나 사회적 지위의 높음, 또는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국민들의 생명을 지킨다는 긍지, 국민들의 무한한 신뢰와 사랑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잘한다고 칭찬해서 기를 살려 주고 배운 의학 지식을 맘껏 펼쳐보라고 판을 깔아 줘도 부족할 텐데, 과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그동안 몇 번에 걸쳐 의료계의 자존심 회복을 꾀한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곤 했다. 의사(醫師)의 스승 사(師)자를 내려놓은 지는 한참 되었고, 누구든 시비걸기에 만만하고 희생양으로 쓰기 좋은 동네북 신세가 되어 처량하기 이를 데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중국의 고전 한비자(韓非子)의 화씨지벽(和氏之璧)의 고사가 떠오른다. 초나라의 화씨라는 사람이 귀한 옥을 발견하여 왕에게 바쳤으나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왕은 오히려 화씨를 벌하고, 다음 왕이 즉위하여도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그 다음으로 문왕이 즉위한 후에야 그 가치를 알아보고 나라의 보물로 삼았다는 내용으로, 진정한 보물은 그 가치를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이라야만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이 고사성어의 내용과 많이 닮아 있다. 우리나라의 의학 수준은 세계적이다. 한국 의사의 논문이 권위 있는 국제 학회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일은 흔한 다반사가 된지 오래 되었고, 각 분과별로 세계적으로 손꼽는 명의 중에도 한국 의사들이 상당수 포진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 국민들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 가치를 잘 모르는 듯하다. 귀한 옥을 가지고 있으되 옥인지 돌인지 구별을 못하는, 아니 오히려 돌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고사속의 문왕은 늦게나마 보물을 얻었지만, 과연 우리 국민들은 어떨까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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