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만난 작가] 금경...전속력으로 휘두른 붓, 우주를 낳다
[서영옥이 만난 작가] 금경...전속력으로 휘두른 붓, 우주를 낳다
  • 서영옥
  • 승인 2018.08.2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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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본질이자 우주의 근원에 주목
음양오행사상·이기일원론 등 참고
정물화서 형체 무너진 氣畵로 옮겨
행위 자체 강조한 액션페인팅 체득
흑·백·청색의 선으로 기의 시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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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옥이 만난 작가, 금경

필자는 1998년부터 금경과 예술적 유대감을 형성해왔다. 과거를 더듬어 현재를 논하고 미래를 가늠한 시간들이 길고 고르고 두텁다.

작가 금경은 오랫동안 ‘기화(氣畵)’에 천착해왔다.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처럼 번역하면 의미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는 ‘기화’는 설명하기 녹록하지 않은 영역이다. 기(氣)라는 용어 자체가 갖는 변곡점은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한민족 특유의 흥(興)이나 한(恨)을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기(氣)와 에너지의 모호한 경계에서도 혼란을 겪게 된다. ‘화(畵)’를 ‘페인팅(Painting)’과 동일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여 관람자에게 맡겨질 해석의 여지와 몫은 크다. 그럼에도 사족이 될 수도 있는 소견을 부치는 것은 오랜 시간 그의 작업과정을 지켜본 애정 어린 관심임을 미리 밝힌다.

작가와 작품은 닮게 마련이다. 작품은 작가의 혼이 담긴 물적(物的) 집약체이기 때문이다. 작가 금경의 회화가 그렇다. 금경의 기화는 기(氣)가 창작의 주요 원천이다. 허공은 생성 변화하는 기(氣)로 가득하다. 동양에서는 기(氣)를 우주의 근원이며 그 본체는 형태가 없는 태허(太虛)라고 한다. 유(有)만을 실체로 삼는 서구적 입장과는 대조적이다. 금경의 작품에서 포착되는 기(氣)는 동양 사상이 근간이다. 거기에 작가의 인생관과 예술관, 자연관, 정념, 직관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졌다. 우주의 근원인 기(氣)야말로 예술의 본질과 맞닿는다고 믿는 금경의 예술적 사유는 한결같다.

필선을 타고 흐르는 기운이 경계를 가른다. 서로 마주치다 틀어지는 힘찬 선이 정지하다가 솟구치며 캔버스 밖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온몸으로 토해낸 듯한 선은 작가에게 응집되어 있던 자기 정체성의 폭발음인가 싶다. 약동하는 선은 주로 흑과 백으로 변주되다가 더러는 붉게 가끔은 푸른색으로 기(氣)의 본성을 시각화 한다.

그의 작업방식은 힘차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뿌리거나 흘릴 때 생기는 효과와 전속력으로 붓을 휘두르거나 내리그어서 생기는 우연적인 선이 대부분이다. 바닥에 펼친 폭 2m, 길이 9m의 대형 천위에 한 호흡으로 물감을 뿌려서 마무리한 작업에서부터 1호 크기의 타일 위에 안료를 흘리거나 붓의 결을 남기는 방식 등, 다양한 제작방식으로 탄생한 작품 수백점이 그의 화실 두 칸을 가득 메운다. 자동기술법(Automatisme)적인 측면에서 보면 액션페인팅(action painting)을 상기할만하다. 즉 동·서양화법의 접점이며 기(氣)를 화(畵)로 시각화 한 것이다. 이때 여백은 서양화의 채워진 면, 예컨대 밀레의 <만종>에서처럼 석양에 칠해진 면과는 달리 공(空)과 허(虛)와 무(無)의 공간이다. 허무(虛無)의 공간이 아닌 태허사상(太虛思想)의 순환적인 공간개념이다. 선은 붓글씨처럼 일필휘지의 휘호를 일획으로 구사하지만 시·서·화(時·書·畵) 일치의 문인화와는 그 경지를 달리한다.

이러한 그의 조형 언어는 일종의 표현이며 기록이다.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자 삶에서 마주한 생기소멸의 행간을 더듬는 일이기도 하다. 시간과 공간에 예속된 유한한 존재가 기를 예술로 치환해가는 노력으로 봐도 좋다. 마음에 이는 번민의 환원이라고 하면 무리일까. 작가는 그것을 기화(氣畵)라고 한다. 자칫 불명료한 단면이 될 수도 있는 기화를 학위논문(박사)으로 정리함으로써 독자적인 예술의 길을 자리매김했다. 자유로운 듯 절도 있고 절제된 긴장감은 철학적 사유와 화론이 밑바탕이다. 그가 박사논문에서 참고한 사상과 화론은 다양하다. 음양오행사상(陰陽五行思想)과 성리학의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理)와 기(氣)의 원리를 통해 자연·인간·사회의 존재와 운동을 설명한 성리학적 이론체계), 사혁(謝赫)의 화육법과 석도화론(石濤畵論)등이다. 객관적인 대상을 벗어나 주관적인 순수성을 추구한 추상미술(Abstract Art)도 배제할 순 없다.

금경의 기화는 풍경화와 정물화 인체묘사로부터 출발했다. 작가는 취미로 하던 꽃꽂이도 출발선에 위치시키려고 한다. 이행경로를 정리하면 꽃꽂이→ 연필드로잉·유화→ 기화(일필휘지一筆揮之)→ 기화(Dripping, installation)→ 기화(복합매체)가 된다. 일련의 경로에 대한 반추는 현재를 가늠하는 단서로 요긴하다. 누드가 작업의 주 모티브였던 96년 이전부터 그의 시·공간적 탐색은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기(氣)의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했던 것이다. 차츰 형체가 와해된 인체는 사실적인 요소로부터 정신적인 요소로 그 무게중심을 옮겨갔다. 뚜렷한 형상(形象)을 묘사하던 사생(寫生)의 선이 형사(形思)의 선으로 변모하다가 기화(氣畵)로 전환된 것이다.

작가는 일찍이 형상성을 피하고 이념이나 체제, 이론적 배경을 배제했다. 그보다는 순간적인 감흥과 직관에 중점을 둔다. 자기표현에 집중한 것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금경의 기화는 화론이나 기존의 철학에 편승하지 않는다. 학문적인 토대나 철학적인 사유도 참고만 했을 뿐 토대로 삼지 않은 채 대상화되지 않은 기(氣)를 화(畵)로 구현했다. 독자적인 화법을 지향하는 그에게는 기존의 패러다임이나 방법론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기억할 것은 화론이나 철학에 편승하지는 않지만 기반 했다는 점이다.

작가는 온갖 기쁨과 번뇌 속에서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혁명가가 되곤 한다. 가끔은 현실에 풍덩 뛰어들지 못하는 소심함에 매몰되기도 한다.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다. 이러한 고독은 적절한 상대를 만나지 못한다면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군중 속에서의 고독은 더욱 견디기 힘들다.” (금경의 작가노트 중에서) 그의 고백처럼 금경은 종종 세상과의 관계에서 고립을 자처하고 고독을 벗 삼는다. 고독한 채로 모방이나 차용을 거부하며 새로움을 찾아 나선다. 무가치한 것을 솎아내고 가치 있는 것의 진수를 투영하며 소신껏 자기혁명을 주도해 나간다. 기를 모아 엣센스(essenc)만 남기려는 노력이 금경에게는 반복되는 생활(life cycle)이다. 이러한 삶을 되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절대고독 속에서 뿜어져 나온 자기결정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때문에 모든 텍스트가 이미 존재했던 것들을 재결합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하여도 금경의 작품에는 적절하지 않은 비유가 될 것 같다. 유동적인 그의 호흡은 매 순간이 다른 모습을 취하기 때문이다.

일획으로 마무리하는 금경의 작업방식은 시종일간 상당한 집중력을 요한다.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의 주장처럼 영육을 둘로 나누지 않는다. 우주의 근본을 회화의 근본과 연결 지으려는 그의 노력은 생명력을 지닌 선의 응집과 확산으로밖에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다양한 크기의 화면에서 일맥상통하게 포착되는 것은 생동감이다. 그것이 수차례의 개인전 및 단체전에 참가한 경력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삶은 촌각은 늘 바쁘다. 그리고 새롭다. 작가 금경에게는 붓을 잡는 그 순간이 새로운 순간이다. 그의 마음과 붓과 캔버스가 하나 되어 일구어낸 기화가 새벽을 여는 해의 기운처럼 힘차게 천지사방으로 번져가길 바란다.

 

 
금경(본명:김경)

△대구대학교 대학원 미술· 디자인학(서양화)박사, 계명대학교 대학원 미술학(서양화)석사, 동아대학교 예술대학 졸업(서양화)학사

△(전)대구대학교, 신라대학교, 동아대학교 강사

△2017년 제13회 개인전(시몬갤러리, 긴자) 동경, (대산미술관 1,2전시실)창원, 2016년 (동아대 석당미술관 1관, 2관) 부산 등 전시

서영옥ㆍ미술학박사 shunna9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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