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삼이 지 먹을 게 없으면 먼저
내장을 버리고
몸무게 줄여 버틴다하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해삼을 썰다가
후루룩
문어는 먹을 게 없으면
지 다리를 뜯어먹으며
새 다리가 돋을 때까지 기다린다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삶은 문어다리를
질겅질겅
온갖 것들로 채워진 나의 장기(臟器)여
우리도 열흘쯤 굶게 되면
베갯잇이라도 뜯어먹고 웅크릴 거야
그런 줄도 모르고 당신은
확인해 보겠지 발길로
툭툭
◇차영호 = 충북 청원 출생. 1986년 내륙문학으로 등단. 시집 ‘어제 내린 비를 오늘 맞는다’, ‘애기앉 은부채’, ‘바람과 똥’ 등.
<해설> 마지막 순간은 늘 경이롭다. 자기 내장을 비워야 하는 해삼이나 자기 다리를 뜯어먹어야 하는 문어, 생의 욕구가 새삼 눈부신 아픔으로 다가온다. 우리 또한 열흘쯤 굶게 되면 베갯잇이라도 뜯어먹어야 한다는 화자의 저 고뇌가 처량하도록 슬프다. 생은 그처럼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제왕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