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품은 사람
제주가 품은 사람
  • 승인 2018.08.3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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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교육대
학교대학원 아동문
학과 강사
제주도는 자연경관으로도 늘 아련한 그리움의 섬이지만 그가 품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은 더욱 그리움을 깊게 한다. 그래서 제주도에 보름 살기 계획을 세우면서 화가 이중섭과 제주 탄생 설화의 설문대 할망과 제자 수영을 제대로 만나보고 싶었다. 화가 이중섭은 오래도록 내 가슴에 애잔하게 살고 있어, 4년 만에 ‘이중섭 미술관’을 다시 찾았다. 미술관으로 올라가니 그림이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많이 보충되고 정비되어 있었다. 6·25 전쟁 시기, 그림 그릴 화지가 없어서 담배 갑 속의 습기를 방지하려고 싼 은박지에 못으로 긁어가며 그린 은지화! 사람들은 그의 소 그림을 좋아하지만, 나는 먹을 것이 없어 바다 게를 잡아먹은 것이 미안해 게의 넋을 달래기 위해 그렸다는 ‘큰 게와 아이들’ 그림이 좋다.

그의 애잔한 삶의 정신이 담긴 그림이라서. 대지주 아들로 일본 유학을 할 만큼 부유했던 그에게 북조선 임시 인민 위원회가 토지개혁법으로 재산을 몰수하지 않았다면, 현해탄 건너있는 부인과 아들을 보러 갈 배삯이 없어 “그림은 내게 있어 나를 말하는 수단밖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는 그의 고백처럼 그의 방 벽에 붙어있는 시. ‘소의 말’에 쓰인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이라는 그의 각박했던 삶이 아니었다면, 그는 후세에 값진 작품을 남길 수 있었을까?

그의 가난이 예술혼의 테마로 불태워졌음에 우리는 공감과 감동을 받는 것이다. 간암으로 적십자 병원에서 혼자 쓸쓸히 죽어간 그의 죽음은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의 죽음처럼 신원이 확인되기 전까지 걸인 취급을 받았다. 그래도 그의 은지화를 미국에 가져가 뉴욕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아더 맥타가트 덕에 세상에 이름 있는 화가로 남았으니 그나마 다행인 복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가족과 오붓하게 살아보고 싶었던 그의 절절한 가족애는 내 가슴에 늘 애잔함으로 담겨있다.

이중섭 다음으로 마음에 담겨있는 설문대 할망을 만나기 위해 테마공원을 찾았다. 바다 가운데를 메우기 위해 치마폭에 돌과 흙을 담아 날라 제주도를 만들었고 흙을 나르다 흘린 것들이 제주도 오름이 되었다는 제주도 탄생 설화가 허풍스럽기 그지없다. 그렇지만 오백 명 장군아들에게 먹일 죽을 쑤다가 죽 솥에 빠져 죽은 어머니를 가슴에 품고 슬퍼하며 떠나던 막내가 차귀섬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애잔하게 늘 가슴에 고여 있었다. 그런데 ‘설문대 할망 테마공원’에 와보니 김용우 원장이 사람모양으로 형성된 현무암을 손질 하여 설문대 할망과 설문대 할망의 오백명 아들로 ‘사랑 연못 공원’을 만들어 두었다. 설문대 할망의 넋을 수천만 년이 지난 지금에도 거기 붙들어 둔 듯하다. 이렇게 작품화해놓은 김원장의 마음속에 배고픈 자식들을 위해 죽을 끓이다 죽솥에 빠져 죽은 어머니의 모성애가 얼마나 뜨겁게 녹아있었으면 이렇게가까지 형상화하고 싶었을까?

그 마음이 읽혀진다. 설문대 할망의 모성애는 제주라는 태평양에 있는 한 고장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구상 5대양 6대주 세상 모든 곳에서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희생하며 살고 있는 분들의 애환이다. 설문대 할망! 그 이름은 가난을 삶의 조건으로 이겨내며 지금도 자식을 희생으로 거두고 있는 세상 모든 어머니의 이름이기도 하다.

제주도에서 세 번 째로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유명하지는 않지만 현존 인물이다. 제주도 초등학교에 발령받아 있는 제자는 꽃다발을 들고 나왔고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내가 쓴 동화책들이랑 교육수필집을 건네주고 교사 3년차로 살아가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화여대 특수교육과를 수석 입학, 3년간 전면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한 뒤 꿈에 그리던 제주도 지원, 임용고사에서도 수석을 했단다. 이렇게 똑똑한 그가 버려진 개가 불쌍해 키우다가, 개 기르는 사람한테는 세를 놓지 않겠다는 집주인의 요구에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단다. 개를 키우려고…. 학교에 들어온 떠돌이 개도 아이들이 괴롭히는 것을 참기 어려워 결국 7만원의 비행기 삯을 들여 대구 부모님께 보냈는데 다시는 개를 보고 다니지 말라고 당부하더란다.

이렇게 정이 많은 아가씨 교사는 특수아들과 지내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며 꿈을 이야기하였다. 직장을 구할 길 없어 길에서 방황하는 특수아들을 위해 교사를 그만두고 그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줄 커피집을 차리고 싶단다. “아서라. 너가 차린 커피숍에 도대체 몇 명이나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겠냐? 그 머리로 공부를 더 하여 대학교수가 되면 제자들을 통해 특수아의 복지정책도 사회적으로 더 넓게 펴갈 수 있을 텐데… ” 삶을 감성적으로만 생각하는 순수한 제자의 꿈에 쇄기를 박아버렸다. ‘호꼼 아장 쉬엉 갑서(잠시 앉아서 쉬어 가세요)’ 말처럼 잠시 앉아 쉬면서 조금 더 생각해 보고 말해주어야 했을까?

돌아와 생각해본다. 제주도에는 자식과 아내를 절절히 그리워했던 화가, 지아비가 살았고. 500명 아들을 사랑했던 홀어미 설문대 할망이 살았고 특수아들과 버려진 개를 사랑하는 젊은 교사, 제자가 살고 있다. 내 가슴엔 지고지순한 인간적 사랑을 품고 사는 혼이 머무는 섬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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