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 통할 수 있는 길(行)
사람들 사이에 통할 수 있는 길(行)
  • 승인 2018.08.3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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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전 중리초등교장


워싱턴 특파원으로 파견된 기자가 알파벳도 제대로 모르는 일곱 살짜리 딸과 함께 미국에 가서 아이를 그곳 학교에 입학시켰단다. 아이는 아침마다 학교에서 “나는 성조기와 그것이 상징하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합니다.”하고, 매일 ‘국기(성조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더니 금방 익혔다고 한다.

그 어린 딸이 제일 먼저 학교에서 배운 영어가 ‘국기(성조기)에 대한 맹세’였으며 결국 집에 와서도 매일 중얼거리게 된 첫말이라고 한다. 자유민주국가인 미국에서 주입식으로 애국정신을 고취하는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국은 명예교육을 철저히 하는 나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필자가 교직에 근무할 당시에 국기 교육이 엄격하였던 시절이 있었다. 국기 게양과 강하 때는 반주 애국가가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반드시 국기를 향하여 제자리에 멈춰서야만 했다. 학교에서는 국기 강하에 두 사람의 교사가 마주서서 국기를 공손히 받아서 순서에 맞게 가지런히 포개어 국기함에 담았다. 신규교사가 부임하면 국기 강하의 방법을 연수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국기에 대한 맹세’가 만들어졌다. 아침마다 교실에서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면서 학생들이 ‘국기에 대한 맹세’를 복창하였다.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사정과 형편으로 간소화되었다. 현재는 큰 행사시에만 녹음된 약식을 들려주는 정도인데 그것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국기법시행령’에 따라 각종 행사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 중 애국가를 연주할 경우 국기에 대한 맹세문 낭송을 생략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2007년 이후 맹세문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에서 ‘자유’가 또 말썽인 모양이다. 태극기 집회 때문에 ‘태극기 앞에’가 시끄럽단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시책 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듯하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이다.

자장(子張)이 스승인 공자에게 ‘행(行)’에 대하여 물었다. ‘행(行)’은 ‘사람들 사이에 통할 수 있는 길’이다.

공자는 ‘말은 성실하고 신의가 있어야 한다. 행동은 독실하고 공경스러워야 한다. 그렇게 하면 비록 야만의 나라일지라도 그곳에선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말이 부실하여 믿음성이 없고, 행동이 경솔하고 천박하면, 아주 작은 부락에서조차 일이 뜻대로 안될 것이다. 앞을 바라보면 앎과 독실함이 보이고, 또한 수레를 타면 멍에에 그 지성과 독실이 나타나 보이는 듯하면, 만사가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다.’하고 일러 주었다.

자장은 스승의 그 말을 잊지 않기 위하여 큰 띠에 기록하였다.

중용에 ‘하늘이 준 것이 성(性)이고, 성에 따르는 것이 도(道)이고, 도를 닦는 것이 교(敎)이다. 그러므로 도(道)는 잠시라도 떠나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중국의 여러 학자들이 갑골문자에 나타난 ‘도(道)’의 글자를 살펴보았다. 도(道)는 ‘행(行)’이란 글자 안에 들어 있었다.

도(道)는 ‘시작한다는 수(首)’와 ‘쉬엄쉬엄 간다는 착(?)’이 결합된 글자이다.

수(首)는 시작한다는 의미로 십자로 위에 선 사람이 길을 떠나기에 앞서 그 행방을 결정하려고 잠시 머무르고 있는 형태이다. 지금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상태이지만 길은 언제나 한 줄기 목표설정이 되어 있다.

‘쉬엄쉬엄 간다는 착(?)’은 행(行)과 같다. 행은 왼발의 척(?)과 오른발의 촉(?)이 결합된 글자이다. 왼발의 척(?)은 몸을 지탱하는 일을 하고, 오른발의 촉(?)은 몸을 앞으로 나아가는 일을 한다. 사람들은 척(?)과 촉(?)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였을 때 가장 큰 결과를 나타냄을 알았다.

과거에 육상의 트랙은 시계바늘 방향으로 돌았다고 한다. 지금은 트랙을 시계바늘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다. 오른발 사용이 많은 것이 첫째 이유이고, 사람의 심장은 왼쪽에 있어서 트랙을 돌 때 부담을 적게 주기 때문이란다.

사람들 사이에 통할 수 있는 길의 뜻인 ‘행(行)’은, 사람들의 생활에서 잠시라도 떠나서는 안 되는 도(道)를 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고 한다. 교육의 힘은 위대함을 알아야 한다. 하나의 이치로써 모두를 꿰뚫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백년이상을 내다보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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