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도(暴徒)의 재림(再臨)
폭도(暴徒)의 재림(再臨)
  • 승인 2018.09.0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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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테러를 당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페이스북에 올린 필자의 글에 다짜고짜 욕설과 함께 본인의 과격함을 내세운 댓글 협박이었다. 게시한 글의 내용은 이산가족 상봉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물론 글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한 욕설이 난무한 댓글이었다. 본인은 모항공사에서 근무했고, 모신문사에서 근무했다고 밝히면서 말이다. 그가 궁금했다. 그의 페이스북을 찾아가보니, 필자와 겹치는 페친(페이스북 친구의 약어)가 꽤 많았다. 모순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한 사람의 글에 대해 무차별 욕설을 퍼붓고도 그의 일상이 얼마나 평화로운지를 말해주는 포스팅(posting, 페이스북 등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글을 게시하는 행위)하고 있었다. 가끔 주위 작가들로부터 피해를 당했다는 소리만 들었지, 직접 겪어보니 손발이 떨려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분노는 그 다음이었다. 무슨 정치적 성향의 글도 아니고,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공개적으로 댓글에 남긴 그의 배포(?)와 방향을 잃은 용기는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무엇이 그를 정체불명의 괴물로 만들었을까.

폭력적인 사람의 무리를 폭도라고 한다. 1980년대 무고한 광주시민, 엄밀하게 따지면 정의로운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간 시절이 있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의 시절도 있었고, 주객전도(主客顚倒)의 시절도 있었다. 시간을 역행할 수 없듯이, 격동의 시절이든, 오욕의 시절이든, 시간이 흘러가면서, 사필귀정(事必歸正)이 불변의 진리임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역사다. 절대 권력이라 일컬었던 고려 무신정권도 무너졌고, 군부가 정권을 장악했을 때에도 영원할 것으로 여겼으나, 결국 무너졌다. 제 아무리 정권을 장악하였다고 해도, 정의롭지 못한 무리들은 패망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거짓말처럼 전직 대통령이 줄줄이 검찰청 앞에서 인터뷰를 하는 대한민국은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정치적 보복이니 뭐니 해봐야, 신독(愼獨)에 힘써왔다면 포토라인에 설 이유가 없다. 한마디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국민을 기만하고는 무사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역사는 더디게 흘러갈지언정, 바르게 흘러갈 수밖에 없다. 5.16군사혁명이 사실은 쿠데타였음을, 5.18사태가 폭도들의 시위가 아닌 민주화운동이었음을 밝히는 데도 이만큼 시간이 흘렀다. 이를 위해 목숨을 던졌던 수많은 의사와 열사의 노력이 있었고, 그에 못지않은 ‘무관심’도 있었던 탓이다. 물살의 완급(緩急)은 우리들이 만들어 온 것이었다. 르완다 집단학살(Genocide in Rwanda)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당시 계엄 상황에서도, 용기를 내준 외신기자들 덕분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철없던 나이가 전 세계에 알려졌다. 물론 당시 국내기사에는 단 몇 줄의 빨갱이 폭도들의 기사가 실렸을 뿐이었다. 국가가 깡패였던 시절이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오욕의 역사인가.

폭도들의 폭력과 폭행과 폭언은 국가를 전체주의(全體主義)로 만드는 주재료이다. 과거의 폭도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또다시 재림을 꿈꾸고 있다. 눈에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계정들로 분신한 수많은 폭도들이 무의미한 전쟁놀이에 여념이 없다. 심약한 이용자들은 탈퇴하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피해사실을 널리 알리고 공유할 필요가 있다. 사이버 테러가 얼마나 무서운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댓글 하나로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현대사회를 부정해선 공정사회가 이루어질 수가 없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누리소통망에서 친구를 맺을 때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여차하면 ‘내’가 잘 알지 못하는 폭력적인 친구로 인해서 ‘나’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정치적 성향과 정체성을 묻는 이들은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부류와, 이미 진보성향임을 속단하고 물어보는 부류다. 지면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밝히지만, 필자는 보수도 진보도 아닌, 옳은 쪽이다. 스스로 판단해서 옳지 않다고 생각되면, 어느 쪽이든 소신을 밝힐 생각이다. 흔히 ‘빨갱이’라고 일컫는 종북(從北)이나 친북 쪽으로 분류되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일관성을 유지하기도 힘든 사람들에 의해 분류당하고 싶지도 않다. 오히려 한반도 평화는 스스로 지키자는 주의(主義)에 가깝다. 주변국들에 휘둘리지 않는 자국의 평화정책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기껏 남북한이 합의한 사항이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로 인해서 지켜지지 않고, 정치적으로 국민들을 이용하는 만행을 수도 없이 겪어왔지 않은가. 이제는 유치하고 속 보이는 정치놀음은 그만두어야 한다. 온 국민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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