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신리마을] 짙푸른 미숭산 ·맑은 내곡천…시골 외갓집같이 편안하네
[고령 신리마을] 짙푸른 미숭산 ·맑은 내곡천…시골 외갓집같이 편안하네
  • 김광재
  • 승인 2018.09.0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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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태자 머물렀던 옥담
팔만대장경 이운순례길 등
지역 곳곳 고난의 역사 서려
고령신리마을9
고령 신리마을은 미숭산자연휴양림, 대가야고령생태숲 아래에 있는 청정마을이다.
친환경 우렁이농법으로 재배한 쌀로 유명하다.

2018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 고령 신리마을

고령 신리녹색체험마을을 찾아가면서 신리마을 홈페이지(www.신리.kr)에서 본 ‘정과 사랑이 넘치는 외갓집 같은 체험마을’이라는 구절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린 시절 외갓집에 대한 기억은 사람마다 제각각일 텐데, 신리마을이 사람들에게 ‘외갓집 같다’는 느낌을 준다면 무엇 때문일까.

오랜만에 맑게 갠 하늘을 보며 신리마을로 향했다. 내곡천을 거슬러 난, ‘낫질로’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길을 따라 신리마을에 도착했다. 신리마을도 앞에 낫질을 붙여 ‘낫질신리마을’이라고도 한다. 신리 녹색체험마을 정호(54) 사무장에게 “‘낫질로’ 검색하니 풀 벤 얘기만 나오더라”고 했더니, 천오백 년 전 이야기부터 들려주었다.

 

고령신리마을3-힐링
미숭산 자연휴양림.

“가얏고마을을 지나면 중화저수지가 나오죠? 그 저수지를 낫질못이라고 하는데, 거기부터 우리마을까지를 모두 ‘낫질’이라고 해요. 옛날 대가야가 신라군의 공격을 받아 망할 때, 월광태자가 우리마을로 피신해 와서 하룻밤을 묵고 합천으로 넘어갔다고 해요. 그래서 귀한 분이 납신 길이라고 해서 ‘낫질’이라고 불리게 됐답니다. 신리마을을 크게 옥담, 낙골, 음지마 세 마을로 나눠지는데, 옥담은 군사들이 월광태자를 옥처럼 둘러싸고 지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고, 낙골은 비단옷을 입은 귀한 사람들이 올라갔다고 해서 ‘비단 라(羅)’자를 써서 나곡, 낙골이라고 합니다. 또 몽골 침입때 강화도에 있던 팔만대장경을 해인사로 옮겼는데, 그때도 우리마을을 거쳐 미숭산과 문수봉 사이 낫질신동재를 넘어 해인사로 갔다고 해요. 고령, 성주, 합천 3개 군이 공동으로 조성해 놓은 ‘팔만대장경 이운순례길’이 우리마을을 지나갑니다.”

 

고령신리마을2-생태숲
대가야 고령 생태숲.

고난의 역사가 서린 신리마을은 지난 2007년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을 받았고, 2015년에는 창조적마을만들기 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생태체험마당, 녹색쉼터, 행복충전 시골길, 바닥분수 등을 조성하고, 친수공간 정비, 마을 진입로 벽화 그리기 등 마을 환경을 개선했다. 체험객 5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체험관도 갖추고 있다.

체험프로그램으로는 두부반들기, 떡메치기, 감자·고구마·옥수수·밤 등 계절별 농산물 수확체험, 메뚜기잡기, 누드벌꿀관찰, 벌꿀따기와 먹기, 허수아비만들기 등이 마련돼 있다. 특히 여름철 어린이 단체 체험은 바닥분수 물놀이, 대나무 물총 놀이, 트랙터 마차로 마을 한 바퀴, 바비큐 등으로 구성돼 만족도가 높다. 성인 단체나 가족들은 마을에서 가까운 미숭산 자연휴양림, 대가야 고령생태숲 트레킹과 연계한 체험프로그램이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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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체험객들에게 인기 높은 바닥분수.

현재 신리녹색체험마을은 연중 체험가능한 대표 체험프로그램으로 양봉 관련 체험을 개발, 정착시키는데 힘을 쏟고 있다. 마을을 둘러싼 산에 아까시 나무가 많고 오염원이 없어 신리마을은 벌을 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예전에는 대다수 주민이 양봉을 했으나 지금은 몇 가구만 계속하고 있다. 양봉은 여왕벌 찾기 등 시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 많아서, 고령으로 눈이 침침해지면 벌을 치기가 힘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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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리마을 하트터널.

70여 가구 100여 명의 주민이 모여 사는 신리마을의 대표적인 농산물은 쌀과 양파다. 청정 오지마을에서 친환경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신리마을의 쌀은 전국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마을 논에서는 올여름 유난한 가뭄과 폭염을 이겨낸 벼가 익어가고 있다. 이파리들은 아직 초록을 유지하며 기세등등하게 하늘을 찌르고 있지만, 살이 오른 이삭들은 순한 자세로 논바닥을 굽어보고 있다.

벼가 익어가는 논을 바라보다 문득 이게 바로 ‘외갓집 같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사와 무관한 도시 사람들도 벼가 익어가는 논 풍경을 보면 왠지 마음이 풍성해진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물림하고 있는 ‘문화적 디엔에이’일 수도 있겠다 싶다. 미숭산 자연휴양림과 대가야 고령 생태숲을 둘러보고 내려오다, 마을 위에 있는 신동저수지 둑에 서서 신리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짙푸른 산자락과 그보다 밝은 녹색의 들판, 그 사이사이 숨어있는 지붕들이 만들어낸 풍경은 상상 속의 외갓집 동네였다.

추홍식·김광재기자

 

<우리 마을은>
 

고령신리마을6-인물
정호 사무장

 

정호 신리마을 사무장...“양봉체험 프로그램 개발에 온 힘”

“농산물 수확체험은 할 수 있는 시기가 짧고 농사에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어서 제약이 많아요. 연중 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이 흥미로워하는 체험프로그램 한 가지가 있어야 체험마을사업이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정호 사무장은 누드벌통으로 꿀벌 생태를 관찰하고 직접 꿀을 따보는 체험이나 벌꿀, 프로폴리스를 활용한 비누, 화장품 만들기 체험 등 양봉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2014년 고향으로 돌아온 정 사무장은 대가야 고령생태숲이 개장되면서 숲해설사로 활동했다. 지금은 40여년 양봉을 해온 모친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양봉을 하면서 농사를 짓고 있다.

체험마을 사무장을 맡은 지는 1년 남짓 됐다. 주민 대부분 80대 이상이고 50~60대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여서 거의 혼자 일을 도맡다시피 하고 있다. 지난해 농촌관광대학을 다녔고 올해는 농민사관학교 과정을 다니며 신리마을의 녹색농촌체험마을 사업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양봉체험이 정착된다면 체험마을 사업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벌은 깨끗한 곳 더러운 곳 가리지 않고 꽃이 있으면 꿀을 땁니다. 또 물도 많이 먹는데 더러운 물 깨끗한 물 가지지도 않지요. 우리 마을은 큰 도로도 없고 산에 둘러싸여 있어서 꽃도 물도 전혀 오염이 되지 않은 청정지역입니다. 우리마을에서 생산된 벌꿀의 품질은 최상이지요. 좋은 꿀로 하는 체험프로그램인 만큼 결과도 좋을 거라고 믿습니다.”

<가볼만한 곳>
 

고령신리마을-유물
대가야왕릉전시관

◇대가야왕릉전시관

국내 최초로 확인된 대규모 순장무덤인 고령 지산동고분군 제 44호분의 내부를 발굴 당시의 돌방구조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각 무덤 구덩이에는 발굴보고서를 토대로 유물과 인골을 복제하여 넣어 두었다. 실물크기로 만든 모형 44호분 속에 직접 들어가, 무덤의 구조와 축조방식, 주인공과 순장자들의 매장 모습, 껴묻거리의 종류와 성격 등을 직접 살펴볼 수 있다. 어린이 체험학습관에서는 대가야 이야기, 대가야 캐릭터 만들기, 탁본 및 인쇄, 토기 기와 자기 만져보기, 전통민속품 체험을 할 수 있다.

◇지산동 고분군

주산성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 위에는 대가야가 성장하기 시작한 서기 400년경부터 멸망한 562년 사이에 만들어진 대가야 왕들의 무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 왕릉인 지산동44호와 45호 고분을 비롯해, 왕족과 귀족들의 무덤이라고 생각되는 크고 작은 704기의 무덤이 분포하고 있다. 대가야의 독특한 토기와 철기, 말갖춤을 비롯하여 왕이 쓰던 금동관과 금귀걸이 등 화려한 장신구가 많이 출토된 대가야 최대의 고분군이다. 대부분 일제시대부터 도굴·훼손됐으며, 현재 사적 제79호로 지정돼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 7기의 고분이 발굴 조사되는 등 정비작업이 이루어졌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다.
 

고령신리마을-가야금
우륵박물관

◇우륵박물관

가야금을 창제한 우륵과 관련된 자료를 발굴, 수집, 보존, 전시하고 있는 ‘우륵과 가야금’ 테마박물관이다. 가실왕의 총애를 받던 궁중 악사 우륵이 왕의 뜻을 받들어 12현의 가야금을 만들었다. 가야금 제작과 연주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정악가야금, 산조가야금, 18현가야금, 21현가야금, 25현가야금 등 다양한 가야금을 전시하고 있다. 또 버튼을 누르면 다양한 악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개경포공원

낙동강을 끼고 있는 고령군 개경포의 역사적 의미를 되돌아보기 위해 2001년 조성된 공원이다. 넓은 잔디에 개경포 유래비와 표석, 팔각정·벤치·음수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개경포는 조선시대까지 경상도 내륙지역의 곡식과 소금을 운송하던 포구였다. 임진왜란 때는 의병장 송암 김면이 궁중보물을 탈취해 운반하던 왜적 1천600여 명을 수장시키고 보물을 되찾은 현장이기도 하다. 팔만대장경을 실은 배가 강화도를 출발해 서해와 남해를 거쳐 낙동강을 거슬러 이곳에 도착해, 해인사로 경판이 옮겨졌다. 원래 개산포라 불렸으나 팔만대장경이 도착한 곳이라 하여 개경포(開經浦)라 부르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 개포로 이름을 바꿨으나, 역사적 의의를 되살리기 위하여 개경포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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