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추상미술 대가 정점식의 삶과 예술 다룬 ‘극재 정점식 평전’ 출간
대구 추상미술 대가 정점식의 삶과 예술 다룬 ‘극재 정점식 평전’ 출간
  • 황인옥
  • 승인 2018.09.02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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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옥 “스승과 약속 지켜”
극재-정점식-평전
 
“극재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게 되어 기쁩니다.”

서영옥이 오전 6시, 늦어도 7시면 학교에 가는 유난을 떨던 새내기 미술학도 시기였다. 그때 새벽을 여는 사람이 또 한명 있었으니 극재 정점식이었다. 그는 당시 정년퇴임하고 학교에서 배려한 연구실에서 독서와 글쓰기로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새벽부터 부지런을 떠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불을 밝힌 연구실을 살금살금 올라갔죠.” 조심스럽게 연 문틈으로 책을 읽고 있는 노 신사가 들어왔다.

“숫기 없는 제가 며칠 후에 자판기 커피를 뽑아들고 다시 교수님을 찾아갔어요. 그때 교수님께서 ‘니 누고, 어찌 왔노?’ 하시며 따뜻하게 맞아주셨어요.” 이후 서영옥은 시간만 나면 교수님 연구실을 찾았고, 교수님은 그런 그녀에게 미술과 철학, 삶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들의 우정은 50년이라는 나이차를 극복하고 극재가 타계하기 전까지 20여년간 이어졌다. 서영옥은 극재 선생의 가장 큰 가르침으로 “자기혁명”을 언급했다.

“퇴직 후 한 두 시간 하신 강의를 듣기도 하고, 수업이 없을 때는 연구실로 가 작품 평을 청하기도 했어요. 그때마다 ‘자기 혁명’을 말씀하시곤 했어요.” 내용인즉슨 현실을 직시하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기교에 기대어 꾸미거나 다듬으려 애쓰지 말고, 기존의 것에 안주하기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선생의 예술세계 또한 자기혁명의 연속이었다.

‘극재 정점식 평전’이 출간됐다. 극재 선생과의 인연이 깊었던 서영옥 박사가 엮었다. 극재 정점식은 동·서양의 사상과 정신을 상호보완적으로 운용해 그 접점을 대교약졸(大巧若拙)로 표현해낸 서양화가이자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만든 설립멤버였다. 그는 구상 중심이었던 국내 화단의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추상미술을 개척하며 새로운 예술의 길을 개척하는 한편, 수많은 후학들을 길러냈다.

극재 평전 출간은 묵은 과제였다. 극재 평전은 극재 생전의 약속이었다. 극재 선생이 서영옥의 주례를 설 정도로 노 교수와 어린 미술학도가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쌓아갈 극재 말년 무렵에 평전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선생님 말년에 평전을 제가 쓰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래 니가 써야지’하며 기뻐하셨어요. 그 이후에 평전 쓸 때 필요한 자료들도 하나씩 챙겨주셨어요.”

극재 타계 후 10년 만에 평전이 나왔다. 집필이 늦어졌지만 막상 결심을 굳히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난해 학강미술관과 극재미술관이 주최한 ‘극재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발제문을 발표하고, 대구신문에 ‘서영옥이 만난 작가-극재 정점식’을 지난 3개월 동안 연재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극재 선생님은 60여년간 추상미술로 기성화단의 서양화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음에도 조명이 미진했죠. 활동무대가 중앙이었으면 그분에 대한 평가는 지금보다 훨씬 달라졌을 거라고 봐요. 지금이라도 대구를 중심으로 극재에 대한 재조명이 시작돼 다행스럽습니다.”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됐다. 1부 ‘극재 정점식, 삶의 궤적’편에는 ‘극재 탄생 100주년 기념’전 발제문을, 2부 ‘서영옥이 만난 작가-극재 정점식’편에는 자료와 생전에 함께 한 기억 등을 토대로 극재의 삶과 예술을 서술했다.

저자는 “방점을 찍는다”며 “이번 평전이 첫 평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선생의 자료와 기억이 흩어지기 전에 1차 평전을 내놓고, 향후 자료보강과 연구 등을 통해 더 밀도있는 평전으로 보강하겠다는 말이었다.

“극재 선생은 화가이자 사상가이자 철학자셨어요. 그런 지식 체계 위에 우뚝 서서 새로운 예술의 길을 개척하셨어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비로소 이겼다는 극재(克哉)의 아호처럼 부단한 자기절제와 삶의 변주는 쉬는 법이 없었어요. 이 평전이 대구화단의 거목인 극재선생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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