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고선·휴전선…경계에서 확장되는 예술
등고선·휴전선…경계에서 확장되는 예술
  • 황인옥
  • 승인 2018.09.03 2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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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신라, 박창서전
보이진 않지만 존재하는 선
겹겹이 쌓은 판넬로 드러내
“간극 흐려지면 세계는 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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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가 박창서 초대전 ‘삶의 층위’전이 갤러리신라에서 9월 25일까지 열린다.


예술가가 물성으로 객체를 창작하는 행위를 배제하고 텍스트(text·언어)만으로 미술작품이 가능할까? 개념미술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형태적인 창작을 배제하고 관념만으로 작품을 구현한다. 개념을 뒷받침하는 그 어떤 것도 미술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이는 창작의 결과물로만 제한했던 기존 미술의 범주를 확장했다.

미술의 범주 확장이라는 주제에 압축할 때 작가 박창서는 개념미술가다. “인간이 개념화하고 있는 것과 실제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과 그로인해 발생하는 한계를 다루며 미술과 세계에 대한 확장의 여지를 열어둔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그는 텍스트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형태와의 혼용으로 개념적인 토대를 보다 탄탄하게 구축한다. 이 점에서 그는 후기개념미술가로 분류된다.

후기개념미술가 박창서 초대전이 갤러리신라에서 25일까지 열린다. 등고선과 휴전선을 모티브로 한 설치작품과,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선과 이번 전시작품을 개념적으로 구축한 과정에서 나온 핵심 개념들을 펼쳐놓은 평면 등 5점을 소개한다. 모두 박창서 개념미술의 정곡을 찌르는 작품들이다.

전시주제는 ‘삶의 층위(The Stratigraphy of Life)’. ’삶’은 예술가의 삶이라기보다 일반인의 보편적인 삶을 의미하며, 주제에 녹여낸 뜻은 예술가의 독단에 의해 형성되어가는 삶의 층위가 아닌 보편 일반이 함께 축적해가는 보다 밀도있는 삶의 층위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예술가와 일반인간의 관계맺음에 대한 작가적 철학이 숨어있다. “예술가와 일반인간의 관계는 대등하고 수평적인 민주적 관계여야 한다”는 지론이다.

“지금까지의 미술작품은 작가가 ‘이것이 진리 또는 예술’이라고 일방적으로 관람객에게 강요하는 태도를 취했어요. 그러나 현대는 진리나 예술을 어느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시대고, 예술가보다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진 일반인에게도 그런 역할이 주어져야 한다고 봐요.” 민주적 소통에서의 확장이야말로 층위의 밀도가 더 단단해지고, 더 깊어진다는 것.

작가가 예술적 소재로 포착하는 대상은 경계지점이다. 바다와 땅, 자연과 인간, 과거와 현재,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경계지점을 포착해 작품으로 녹여낸다. 그는 “경계야말로 고착화된 통념이 더 세분화될 수 있는 접점이며 확장의 시작점이다. 예술가로서의 내가 서 있을 자리는 바로 그런 곳”이라고 했다. 한계와 간극이 존재하는 곳이야말로 예술과 진리의 확장이 시작되는 지점이며, 그러한 지점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보다 풍요로워 진다는 논리다.

바닥에 설치된 작품의 주제는 ‘단명하는 선(Ephemeral Line)’이다. 물론 한계와 간극이 존재하는 곳이다. 등고선의 높낮이와 기복을 측면에 압축층이 그대로 드러나는 판넬로 지층을 쌓고, 판넬 가장자리를 직선으로 잘라서 2c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설치했다. 그리고는 등고선의 곡선과 예리하게 자른 직선 위에서 하얀 석고가루를 뿌렸다. 이로 인해 판넬 지층 표면 일부와 설치작품 아래의 바닥에 석고가루가 흐릿하게 퇴적됐다. 또 하나의 선이자 층위가 생긴 것.

“직선은 남북분단의 상징물인 휴전선이다. 역사적으로 워낙 견고한 선이다. 그러나 석고가루가 떨어진 바닥은 경계가 흐릿하고 넓다. 휴전선도 완전한 단절보다 사람과 물자와 예술이 넘나들며 경계가 흐릿해져야 한다는 일종의 은유다.”

박창서의 전시는 “보러 가야 한다”는 의무감을 부추긴다. 발표하는 작품들에 일관성이나 형태적인 맥락이 없어 “이번에는 어떤 작품일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처럼 작품이 다양할 수 있는 데는 질문에 한계와 작업 방식의 제한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화수분같은 질문들을 쏟아낼 수 있는 바탕에 ‘미술사’가 있다고 고백했다. “한 시대를 지배한 중심사조에 대한 반발의 역사가 미술사에요. 미술사에 ‘반발’이라는 예술의 핵심 정신이 배어 있죠. 역사적으로 축적된 ‘진짜 미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들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 아니겠어요?”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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