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결핵
폐결핵
  • 승인 2018.09.0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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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일째 비가 내렸다.
잠시 그쳤다가 다시 쏟아지는데
형부를 뒤세운 언니가 대문을 열고 들어서며 환하게 웃는다.
광대뼈가 더 튀어 나왔다.

어머니도 빗속을 뚫고 시장에 가서 소고기 반근을 사다가
한 솥의 국을 끓였다.

저녁을 먹고 한 움큼의 약을 털어 넣은 언니가
마른 손목을 잡아보며 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사랑해주는
사람은 네 형부라고 한다.
사랑은 농사와 같아서 부지런히 풀을 뽑아주고, 거름도 주고,
물길도 열었다가 닫기도 해야 한다며 농사지어 놓은 딸의
재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다가 나에게 몇 푼의 용돈을 준다.

벽을 짚고 화장실에 간 사이에
형부는 친정에 데려다 달라고 졸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면목 없어 하며 이웃에 맡겨놓고 온 딸을 걱정한다.

나는 어머니가 무엇을 예감하는지 아무런 대꾸도 않는 건
소파 위에 있는 한 보따리의 폐결핵 약 때문이라고 믿으며
언니의 첫사랑에 대해서 생각한다.

빗줄기는 더욱 거칠어진다.
전기불과 텔레비전 화면도 잠시 갔다가 다시 왔다.
기침이 멈추지 않는다며 또 한 움큼의 약을 털어 넣는 것을 보며
나는 잠이 들었다.

어머니가 다급하게 나를 깨운다.
열두 시 십오 분 전,
심어놓은 모가 떠내려 갈까봐
물길을 터주는지 손을 휘젓고 있는 언니

그 후 죽는 것도
큰 농사라는 것을 쓸쓸하게 믿게 됐다.


◇최영자=전북 무주 출생. 1997년 신라문학 대상으로 등단.

그리고 마지막 가는 길을 물꼬 터주는 것으로 회자(膾炙)하는 화자의 슬픔이 짙게 묻어있다.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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