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 고독
의도적 고독
  • 승인 2018.09.0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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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예전의 난, 혼자 있는 걸 유난히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늘 사람을 찾았고, 사람을 만나야만 했다.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밝은 모습의 나였지만, 만날 사람 없이 혼자 있는 날에는 힘들어 우울해지는 나는 늘 사람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그 이유를 이렇게 얘기했었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신나고 힘이 나기 때문에 늘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럴듯해 보이는 말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람들과 떨어져 있는 것이 난 두렵다. 혼자 있으면 마치 외톨이가 되는 것 같아서 솔직히 겁이 난다.”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 그리고 내 생애 가장 큰 사건이 있었던 고등학교를 외로움과 단짝처럼 벗하며 지냈다. 그 후 군대를 제대하고 경상도에만 살았던 경상도 토박이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전라도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외로움의 정점을 찍었다. 안 그래도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내가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전라도로 가서 대학생활을 했으니 외로움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다. 비유해보자면 군인이 적지로 뛰어든 격이고, 포수가 호랑이 굴로 들어간 꼴이었다.

대학생활이 시작되고 많은 만남이 새롭게 시작되었다. 매주 병원 병실로 봉사활동을 나가는 봉사동아리에도 들어 매주 마다 봉사활동을 나갔고,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학생회 임원을 맡아 활동을 하는 등 그야말로 미친 듯이 사람들을 사귀어 나갔다. 그때 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붙임성 좋고, 성격 좋은 사람이라 했을지 모르나, 나는 알고 있었다. 그건 나의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이상했다. 1학년인 나를 학과의 4학년 선배들까지도 모를 사람이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만들어 나갔지만 나는 여전히 외로움에 몸부림 치고 있었다.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늘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이 내 몸을 휘감았다.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이 무엇인지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인생에 정말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계기가 있었다. 항상 나의 자취방에는 사람들이 놀러 왔었고, 내 주위에 늘 사람들이 많았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그 한 주간은 사람들이 내 곁에 없었다. 물론 방학을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내려갔던 이유도 있었지만 친하게 지내던 모든 사람들이 모두 한꺼번에 약속이나 한 듯이 내 곁에 없었다.

돌아보니 그때였던 것 같다. 진짜 고독과 마주했던 때가. 바닥을 친다는 경험. 그때 처음 느껴보았다. 정말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취하던 빈방에 혼자 있는 것이 싫어 강변에 혼자 앉아 있기도 했었다. 잠도 오지 않았고, 깊어진 고독감으로 끝을 달려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혼자 있은 지 며칠이 되던 날 ‘이곳이 바닥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바닥을 치는 순간 괴로움의 감정을 느낀 것이 아니라 무언가 내속에 꿈틀거리는 것을 경험했다. 공이 바닥을 치고 튀어 오른다는 느낌이라 해야 할까? 아무튼 독특한 감정을 경험했다. 오랜 시간 동안 늘 외로움을 달고 살았고 그 외로움의 이유가 바깥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닥을 치는 순간 외로움의 이유가 내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것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나니 내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혼자 있는데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고독이 무서워 뒤로 도망만 치다가 그 고독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니(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혼자서 나를 기다리던 상처가 가득한 ‘내면아이’ 그를 만나게 된 것이다.

외면하고 싶었고, 이제는 잊었다고 생각했던 어릴 적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한 ‘내면아이’를 만나게 된 것이다. 더 이상 나는 도망가지 않았고 아픔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으로 안아 주기로 했다. 이제는 제법 나이도 찼고, 덩치도 커진 20대 중반의 내가, 열 살 남짓의 나를 안아 주었다. 그 순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귀한 경험이었다. 그 이후 나는 사람들과 같이 있어도 즐거웠고, 혼자 있어도 즐거운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고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자신과의 만남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게 된다. 이번 가을에는 일부로라도 고독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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