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생장화
위생장화
  • 승인 2018.09.0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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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수보다 10이 더 큰 장화를 샀다

이리저리 열두 시간 동동 흘러가려면 헐렁해야 한다

나는 동료들보다 뒷굽이 삐뚜름하게 많이 닳아서

자주 새 신으로 갈아신는다

송 언니는 혹시 네 마음이 삐뚠 건 아니니, 농을 건네지만

사실 생각이 좀 복잡해서

가끔 흘러넘치는 생각이 빠져나가는

발바닥이 피곤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처음 온종일 갇힌 발 때문에 울었다

갈라진 발바닥의 통증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깊었지만

허물을 벗듯 새 신을 갈아 신으면서

점점 마음의 슬픔이 줄어들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흐르는 동안

또 다음해 목련꽃이 피고지고 사라질 동안

위생장화를 신고 위생모자를 쓴 채 살아간다

들판이 푸르다 구름의 이동을 점치면서

평사휴게소 옆 포도밭에서 주렁주렁 익어가던

머루포도를 먹는다 단맛이 지나온 슬픔 같다

포도송이만큼 이일저일 잡부로 살았다

어디서 시월의 들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이 몸을 스친다

꼭꼭 접어둔 내안의 꿈이 꿈틀거린다

나는 젖은 신발을 벗고 이제 집으로 가야겠다

더 늦기 전에 신발장 속에서 꿋꿋이 기다려준

나의 구두를 신고 문밖의 세상길을 걸어가야겠다



◇최월강= 경북 경주 출생. 2015년 ‘시에’로 등단.



<해설> 황야를 달려온 무탈한 발, 이젠 쉬어가자는 듯 발바닥은 갈라지고 통증이 온다. 하여 위생장화를 신고 위생 모자를 쓰고 살아가지만 마음에 이는 상처가 더 깊은 아픔으로 온다는 화자의 고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또한 단맛이, 단맛이 아니라 지나온 슬픔 같다는 화자의 통렬한 아픔에 가슴이 아려온다.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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