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하게 진행되는 가처분 재판
신속하게 진행되는 가처분 재판
  • 승인 2018.09.0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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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진
한국소비자원 소송지원변호사


수사 시 검사가 범죄혐의자로 의심되는 사람을 거듭하여 불러서 자백을 받으려고 하고, 법원에서는 재판이 계속 하염없이 진행되고 연기되어 소송당사자들이 지치는 것을 빗대어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루어 조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처럼 재판이라고 하면 적어도 6개월 내지 1년 정도는 각오하고 시작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재판 중 ‘임시로 어떤 재판을 신속하게 해 주십시오’라는 형식이 있고 이를 법률용어로 ‘임시적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 ‘단행적 가처분’이라고 하고, 이를 잘 활용하면 신속하게 재판을 끝낼 수 있다.

최근 입주민이 인천 모아파트 출입구를 차량으로 막았으나 주민들이 힘으로 차량을 다른 곳으로 치운 사건이 있었다. 만일 해당 차량이 주민들의 힘으로도 쉽게 치울 수 없는 곳에 있었다면 법원에 ‘차량을 치워라’는 일반적인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나 소송이 끝날 때 까지는 최소한 6개월 정도 걸린다. 이런 경우 소송이 아닌 ‘가처분신청’을 하면 되고, ‘차량을 이전하고 이전 시까지 매일 금 50만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재판이 진행된다(위와 같이 부과하는 금전을 이행강제금이라고 한다). 이러한 가처분을 신청하면 재판은 약 10일 전후 만에 열리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1회 재판 후 약 1주일 내지 1달 이내에 결정을 내린다. 이러한 가처분신청 절차를 이용하면 빨리 결론이 날 경우 불과 10일 전후 만에 결론(결정)이 나므로 신속하게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다.

과거에 사귀었던 남자가 여자의 의사에 반하여 계속 여자의 집, 직장,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고 전화 및 SNS에 흔적을 남기는 경우에는 ‘1. 집, 직장 및 당사자에게 100미터 이내의 접근을 금지한다. 2. 전화, SNS 등으로 연락을 금지한다. 3. 1항 위반 시 1회 당 금 100만원, 2항 위반 시 1회당 금 50만원을 지급하라’라는 결정이 내려지고 통상 재판기간은 대부분 1달 이내에 끝난다. 더 좋은 점은 대부분의 상대방이 가처분 재판이 시작되면 재판의 중요성 및 압박감으로 인하여 판사의 결정전에 미리 접근 및 연락을 스스로 중단하게 되어 매우 유용하다.

어느 아파트 대표회장이 직무상 위법행위를 하였고, 주민들이 해임투표를 요청하였으나 대표회장과 친분이 있는 선거관리위원들이 해임투표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정의감에 불타는 아파트 주민이 사무실을 찾아와 ‘내 돈이 들어도 회장 및 선거관리위원들의 부당한 행동을 뿌리 뽑겠다’라고 하면서 소송을 의뢰하였다. 역시 가처분 재판으로 해결하였다. ‘1. 00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법원의 결정 선고 후 14일 이내에 회장해임투표절차를 이행하라. 2. 이를 위반할 경우 1일 금 10만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이었고, 법원은 100% 위 내용을 인정하였다.

그런데 상대방은 법원 결정에 승복하지 않고 항고하였다(소송의 1심 판결을 불복하는 경우 ‘항소’라고 하고 가처분 사건의 1심에 불복하는 경우를 ‘항고’라고 한다). 항고심에서도 1심의 결정 내용이 바뀌지 않았다. 결국 상대방은 대법원에 재항고 하지 않고 이에 승복하고 해임투표를 진행하였고, 회장은 해임되었다. 1심 결정이 정한 기한을 약 180일이나 넘겼고, 의뢰인은 상대방으로부터 180일분에 해당하는 1,8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손에 쥐게 되었으며, 그 돈을 본인이 전부 가질 수 있었지만 아파트 발전을 위한 소송이었으므로 본인이 지출한 소송경비를 제외하고 나머지 돈은 다시 아파트에 기부하였다.

이상과 같이 법원은 신속한 재판을 구현하기 위하여 가처분 제도를 마련하였지만 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크게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 법원이 신속한 재판을 구현하지 못하는 것은 맞지만 신속한 재판을 할 경우 반대로 실체관계와 다른 잘못된 판결이 날 수 있다. 신속한 재판을 구현하지 못하는 이유는 현재의 법관 인원수로 감당하기 곤란한 많은 재판이 진행되기 때문이고, 행정부에 비하여 법원의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여 마음대로 법관을 증원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반면 우리 국민들은 필요한 내용을 전부 기재한 서면에 의한 계약, 약속에 익숙하지 않아 스스로 많은 분쟁을 발생시키는 측면도 있으므로 신속한 재판을 하지 않는다고 법원을 너무 비난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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