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명분주의와 ‘두고보자’ 정신의 뿌리
한국인의 명분주의와 ‘두고보자’ 정신의 뿌리
  • 승인 2018.09.0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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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계명의대교수/대구시의사회 정책이사)



건강보험재정과 의료체계에 파탄을 일으킬 것이라는 의료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의료비 급여화 정책인 문케어를 밀어붙이고 있다.

국민들은 과학적 현대 사회에 있다고는 믿기 어려운 벌침(봉침)치료나 안아키(약안쓰고 아이키우기)같은 비과학적인 시술을 받다가 피해를 보기도 한다. 소득주도 성장과 탈원전 정책 실험은 과학적 통계 결과가 수정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어도, 이념과 명분에 빠져 지속되고 있다.

의학과 과학은 우리가 해로운 것들을 피하도록 도와주고 국가 정책이 맞는지를 판단하고 조정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합리적 사실을 이념과 명분으로 부정하고 의료제도와 국가정책을 과학이 아닌 정치적 명분에 따라 밀어붙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와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잘못된 결과에 책임지는 사람은 드물다. 한국인은 왜 이렇게 합리적 판단과 타협에 서투르고 비과학적 명분주의와 오기가 강할까?

문화인류학자 김용운이 쓴 한중일 민족원형 분석서 ‘풍수화風水火’에 답이 나와 있다. 한반도의 환경과 지정학적인 역사가 명분을 중시하고 ‘두고보자’라는 말로 표현되는 오기와 끈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륙 중국인들의 메이파쯔(沒法子, 완전한 포기), 섬나라 일본인의 앗사리(あっさり, 순종적 포기), 아키라메(あきらめ, 체념) 정신과는 대조적으로, 한반도의 편안한 풍토와 외침의 역사가 한국인들에게 감성적 신바람과 포기하지 않는 집념과 오기를 만들어 주었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자연재해가 적은 자연 환경은, 재난(수해, 태풍)는 며칠만 지나면 끝나기 때문에, 순발력있게 대처하는 적응력과 ‘괜찮아요’라는 말로 대표되는 낙관적 심성을 만들었다.

그러나 잦은 외침을 받은 지정학적 역사는, 결국에는 물러나는 침략자를 통해, ‘두고보자’라는 말로 대표되는 저항과 오기의 원형을 만들었다. (중국과 일본에는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이 ‘두고보자’라는 용어가 없다고 한다.)

자주 심각한 지진과 태풍수해를 경험한 일본은 평소부터 긴장하여 지진과 수해에 체계적으로 철저히 대비하고 책임의식이 강한 반면에 자연재해가 드물고 심하지 않았던 한국인은 재난이 있어도 인재를 탓하다가 며칠 만에 잊어버리는 안전 불감증이 생겼다.소를 잃고 난후에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아 다시 소를 잃어버리는 재난이 반복되는 것이다. 일본의 원형은 이긴 쪽에 복종한다는 정신이 강하고, 한국은 명분을 쫓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이러한 우리나라 사람의 명분중시와 오기에는 장단점이 있다. 어려움을 의지로 이겨내는 능력이 높은 반면,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성적인 구호에 선동당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명분과 군중심리로 몰려다니며 비싼 수업료를 내는 경우가 많다. 4조이상의 경제적 피해를 입힌 2006년 ‘도룡뇽 살리기’ 경부고속철 반대와, 심각한 국론분열을 일으킨 2008년 “뇌송송 구멍탁” 광우병 선동이 대표적이다.

이런 음모론 선동에 휩쓸려 피해를 보는 이유는, 과학적 근거를 끈기있게 주장하고 계몽해야할 지식인들의 책임도 있지만, 이념적이고 감성적인 국민의식과 개념없는 정치꾼들의 표를 의식한 선동의 영향이 크다. 문제는 이런 음모론 선동이 거짓으로 밝혀져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개선되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의료나 경제 정책을 명분과 이념에 사로잡혀 오기로 밀어붙이는 일은 없어야하지 않을까?

명분이나 이념이 아닌 과학적이고 합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유연하게 대처하여, 불필요한 국력손실과 경제악화를 막아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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