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음흉한 손
보이지 않는 음흉한 손
  • 승인 2018.09.1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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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새누리교회
담임목사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후속편이다. 이 소설은 모든 것이 거꾸로 전도되는 거울 나라에서 벌어지는 체스게임을 소재로 한다. 이 소설에서 앨리스와 붉은 여왕은 다음과 같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아니, 우리가 내내 이 나무 아래에 있었던 거예요? 모든 게 아까 그대로잖아요.”

“물론이지. 그럼 어디를 기대했는데?”

“글쎄요.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오랫동안 빨리 달리면 보통 다른 곳에 있거든요.”

“굼벵이 같은 나라구나. 여기서는 보다시피 같은 곳에 머물러 있으려면 쉬지 않고 달려야 해. 어딘가 다른 곳에 가고 싶으면 적어도 이것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하고.”

‘같은 곳에 머물려면 쉬지 말고 달려야 한다. 그리고 어딘가 다른 곳에 가고 싶으면 적어도 이것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한다.’ 철학자 김용규 선생은 이 말이 현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고 진단한다.

사회 구성원의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목적으로 16세기 봉건제도 속에서 잉태된 자본주의.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운 상품의 생산과 교환을 보장하고 또 그에 따른 동등한 권리가 부여되는 시장, 그 시장의 작동 원리를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보이지 않는 손’은 이제 ‘보이지 않는 음흉한 손’이 되어 우리 영혼을 쓰다듬는다.

산업 자본주의로 불리는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구성원들은 단지 생산자로서의 노역을 담당할 뿐이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기간시설이 완비되고 생산시스템이 정상 가동됨에 따라 생산량은 급격히 증가한다.

특히 20세기 과학기술의 발달은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드디어 20세기 후반에는 소비가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생산체계가 붕괴될 처지에 이르게 된다. 과잉 생산된 상품들을 과잉 소비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에 빠지게 된 것이 ‘보이지 않는 음흉한 손’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대 자본주의를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는 두 가지 근거가 있다. 그 한 가지는 목적과 수단의 전도(顚倒)이다. 즉 이윤추구라는 자본주의의 수단을 ‘사회 구성원의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이라는 자본주의의 목적과 도치시킨 것이다. 그래서 이윤추구라는 자본주의의 수단이 버젓이 자본주의의 목적으로 자리 잡고 있게 된 것이다.

또 하나는 현대 자본주의의 악순환구조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세계화의 무한경쟁 체제로 사람을 밀어 넣어 끝없는 불안을 조장하고 또 광고와 유행 등의 대중문화를 통해 인간의 무한한 탐욕을 부추긴다. 인간은 ‘불안’하기 때문에 ‘탐욕’을 쫓고, 탐욕을 쫓기 때문에 더욱 불안해지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수단이 목적이 되어 버린 체제와 반복되는 악순환구조는 인간에게 불가항력적 이어서 인간은 스스로 거기서 빠져 나올 힘이 없는 것이다.

이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우리들은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의 주체인 듯 살아간다. 무한 경쟁 속에 생계를 위한 노동에 몰입하고 또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소비에 몰입한다. 자극적인 광고와 변덕스러운 유행은 우리의 숨은 욕망을 자극하고 무의식을 조정하여 충동적인 구매를 강요한다.

어떤 분들은 절약과 검소함으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로부터 탈출하고자 한다. 또 다른 분들은 착한 소비로 거기에 맞선다. 사회적 기업이 만든 구두를 신으며 고정무역에 의한 커피를 마시며 괴물같은 자본주의에 맞서기도 한다. 모두가 소비가 주는 쾌락이 아니라 나눔이 주는 행복으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정체를 아는 분들이다.

성경은 자본주의를 맘몬으로 규정한다. 수단으로서의 돈이 우리에게 목적이 될 수 있으며 오히려 그것이 우리를 다스릴 수 있음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우리 사회는 소비사회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음흉한 손에 노출된 위험사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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