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호로자식이란 말을 곧잘 듣곤 했다
조실부한 나에게 중학교 한문 선생님이
친절하게도 붙여 준 이름이다
똑같이 잘못해도
아비 없는 난 호로자식이 돼야 했다
-모범생이 돼야 한다, 호로자식 소리 안 들으려면!
나만 보면 친절하게 콕 찍어서 일러 주던
그 선생님은 지금 저세상 사람이겠지만
살아 있대도 원망스럽진 않다
그 순간은 피지 못하고 지는 꽃처럼
살아 있음이 참 몸 둘 바 모르게 수치스러웠는데
어쩌면 그런 가르침이
감정의 양면을 일깨워 주었기에
출근길, 한 트럭의 돼지를 보면서
괜스레 화딱지가 난 게 아닌가 싶다
꿀꿀, 꽥꽥거리며
정말 돼지 멱따는 소릴 내는 놈들,
허연 등짝에는
곧 죽을 놈이란 낙인이 식육점 홍등처럼 찍혀 있다
그들은 안다 죽으러 가는 길임을,
나도 안다 내가 호로자식이었음을,
동물의 본능은 이렇게
스스로 숙명임을 받아들여야 할 시간에서야 깨닫곤 한다지
거룩한 이름표 하나 등짝에 붙인 돼지들처럼
*호로자식:후레자식의 지방사투리
◇황명자= 경북 영양 출생. 1989 문학정 신으로 등단.
시집 ‘귀단지’, ‘절대고수’, ‘자줏빛 얼굴 한 쪽’ 외.
<해설> 화자의 애틋했던 지난 세월이 눈물겹다. 후레자식 소리를 경계하라는 한문선생의 말이 낙인으로 찍혀서 살아야 했던 그 고달픈 시절이 비장미를 더한다. 허울 좋은 거적때기 낙인을 운명처럼 입고 산 세월이 얼마나 아파겠는가. -제왕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