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넘침 VS 쥐어짜냄
흘러넘침 VS 쥐어짜냄
  • 승인 2018.09.1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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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그녀는 늘 자신보다는 이웃을 향해 자신의 시간과 사랑을 먼저 나누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사랑은 마치 부모가 자식을 향해 아래로 부어 주는 사랑처럼 그녀가 이웃에게 베푸는 사랑은 내리사랑을 닮았다. 위에서 아래로 물이 흐르듯 그녀의 사랑도 낮은 곳으로, 사랑이 더 필요한 곳으로 흘러넘쳤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낌없이 흐르던 그녀의 사랑이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사랑의 샘이 말라버린 것이다. 바로 그녀에게 ‘섭섭이’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섭섭이는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그 녀석이 오고 난 후부터 세상 모든 것이 힘들게 다가왔다.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어떻게 세상이 이럴 수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니 시작부터 그녀의 삶은 불공평했다. 형제자매 중 가장 말 잘 듣는 자녀였지만 사랑은 늘 막내가, 혹은 맏이가 독차지했다. 늘 그녀는 뒷전이었다. 그녀의 부모한테 물려받은 재산 역시 그녀가 가장 적었다. 늘 양보를 잘하는 성격 탓에 형제들이 부모한테 때를 써서 자기 몫 이상의 것을 상속받았다.

밤잠을 설치며 다시 생각해보니 최소한 자기한테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내가 어떻게 해줬는데 얼마나 나눠 줬는데 말이다. 자녀들은 또 어떤가? 이 녀석들이 내게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괘심하기 짝이 없다.

예전에 필자를 찾아와서 상담을 받은 어느 중년 부인의 하소연이다.

사랑에도 두 가지의 모습이 있다. 하나는 흘러넘쳐서 나누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쥐어 짜내어 나누는 사랑이다. 남에게 나누는 것은 같지만 둘은 큰 차이가 있다.

먼저 흘러넘침의 사랑은 여유로움이 있는 사랑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과 잘할 수 없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고, 잘할 수 있고, 행복해질 일을 하면서 가장 먼저 자신을 행복으로 가득 채운다. 그리고 그 가득 참이 넘칠 때 자연스럽게 사랑이 주위 사람들에게로 흘러간다. 주위에 나눈다고 자신의 것이 절대 줄어들지는 않는다. 자신의 속에서는 계속 솟아나는 옹달샘이 있기 때문이다. 끝없이 계속해서 자신의 행복을 채우는 사랑이다. 채우고 나누고, 다시 채우고 나누고를 반복하는 풍요로운 사랑이다.

흘러넘침의 사랑은 나누고 난 뒤 절대 바라는 법이 없다. 그냥 나누는 그 자체로 행복하다. 그래서 그의 사랑은 나누는 그 당시 행위로 끝이 난다.

반면 쥐어짜냄의 사랑은 배고픈 사랑이다. 자신의 것에서 쥐어짜내어 나누기 때문에 늘 공허한 사랑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누고 난 후 상대방에게 자기가 준 사랑의 반응을 기대하게 된다. “맛있었니? 좋지? 고맙지?” 사랑을 받은 사람의 반응이 돌아와 자신의 빈 공간을 채워줄 때야 비로소 행복해진다. 그래서 늘 쥐어짜냄의 사랑은 목이 마르다. 자기 자신도 부족한 상태에서 나눴기 때문에 자신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고맙다”는 식의 반응이 돌아와야 그때서야 안심이 된다. 혹여나 그렇지 못할 때는 슬퍼진다.

사랑은 쥐어짜냄보다 흘러넘침이 좋겠다. 그래야 사랑이 사랑 그 자체로 아름답게 빛이 날 수 있다. 흘러넘침과 쥐어짜냄. 이 둘은 닮은 듯 다르다. 둘의 차이는 자기 삶에 계속해서 솟아나는 옹달샘(취미가 되었건, 그 무엇이든 자신을 사랑으로 가득 채울)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빵을 다섯 개 먹으면 배가 부른 사람이 빵이 일곱 개 있어서 두 개를 나누는 것과, 빵이 다섯 개만 있는데 덜 먹고 두 개를 나누는 것의 차이다. 전자를 흘러넘침이라 하고, 후자를 쥐어짜냄이라 할 수 있겠다. 어찌 보면 후자가 더 고귀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우리 인간은 신(神)이 아니다. 한두 번은 괜찮지만 계속해서 배가 고프게 되면 결핍이 쌓여 내 삶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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