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잔기침 안갯속을 걸어다닌다
한평생 농사일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는 자식들 성화 아랑곳 않고 자운영 물결치는 세월 곧추세운다
논둑엔 독새풀 파르르, 소 궁둥이 두드리며 이리 이리, 저 저 저 소리치던 아버지의 써레질 맥없이 쓰러지던 날
사람 멕여 살릴 농사가 사람을 잡아먹는당께,
술 한잔 부어놓고 통곡하던 어머니, 논농사 뒤질세라 자투리 빈 밭까지 두둑두둑 수수깡 다리에 힘줄이 섰다
천 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져도 농사는 땅을 파먹고 살아나, 땅은 어머니를 파먹고 또 화들화들 피어나
안갯속 빗방울은 구불텅구불텅 논밭 길 푸르게 빠져 나간다
◇황구하= 충남 금산 출생. 2004년 자유 문학으로 등단. 시집 ‘물에 뜬 달’
<해설> 곡우가 들녘에 봄을 단단하게 심으면 농촌은 한층 바빠진다. 워낭소리 시골 골짜기를 메우고 아낙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진다. 오직 땅에 젖줄을 빨아야하는 시골 살림, 뼈 빠지게 뛰어보아야 다리 힘줄이며 핏줄만 세차게 일어날 뿐이다. 그래도 고단을 학습으로 안고 사는 시골 사람들이지만 이때만은 신난다. 곡우가 구불텅구불텅 논밭 길을 푸르게 빠져나가듯…. -제왕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