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깜’은 축구공을 타고
‘띵깜’은 축구공을 타고
  • 승인 2018.09.1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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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대구경북 다문화사회연구소장
“민기 아빠, 어제 축구 보셨어요? 민기 엄마는 어느 나라 응원했대요?” G씨의 시골 마을에 부모님을 모시고, 떡두꺼비 같이 잘생긴 세 아들의 가장으로서 열심히 살아가는 K씨와의 통화내용이다. 한국에 이주한 베트남 신부들은 어느 나라를 응원했을까?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K씨 왈 “모르겠어요. 마음속으로 누구를 응원했는지. 평소에는 민기 엄마가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데, 베트남과 한국이 축구하는 날이라 그런지 일찍 퇴근하고 와서 같이 봤어요”라고 했다. K씨는 십여 년 전에 베트남 신부와 결혼했다. 그 당시만 해도 신부들이 착하고 순수해서, 한국 남성들이 자신들을 배우자로 선택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예쁜 여성이 우선순위였다. 그러나 K씨는 예외였다. 배우자 선택이 엄청 까다로울 거라는 나의 예상을 뒤엎었다. 까칠하고 정확한 그의 성품에 비해 반전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말씀을 새겨들었다. 예쁜 여자보다는 엉덩이가 큰 여자를 만나야 애도 쑥쑥 잘 낳고 잘 산다고 했다 한다. 그래서인지 수더분하고 맏며느리감인 지금의 신부를 만나 잘 살고 있다. 요즘 보기 드물게 아이 세 명에 연로하신 부모님까지 부양하는 착한 며느리다. 마을의 대소사에 참여도 하고, 직장까지 다니며 동네를 훈훈하게 만드는 분위기 메이커다.

지난달 29일, 아시아경기 남자축구 4강전이 인도네시아에서 열렸다. ‘형제의 나라’ ‘사돈의 나라’ 베트남과 한국 응원단은 양쪽 다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열광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함께 가자 우리’라는 대형 현수막이 등장하여 양국의 화합을 부추겼다. 베트남인과 한국인이 같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베트남은 축구의 나라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일도 하지 않고 축구만 보다가 부부싸움하는 집도 있다 한다. 그래서 축구 시즌에는 전 국민이 축구내기를 한다. 베트남 말로 ‘껌도’라고 불리는 전당포가 성수기를 맞는다. 축구내기에 참여하기 위해서 핸드폰, 오토바이, 자동차, 심지어 집문서 땅문서까지 잡힌다.

필자도 스포츠에는 문외한이었지만, 베트남과 한국의 경기라 일찍 귀가를 서둘렀다. 한국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베트남 신부들이 T.V앞에 앉아서 축구를 보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민기 엄마는 친정나라를 응원할까? 남편의 나라, 세 아들의 나라 한국을 응원할까? 유달리 정이 많은 민족인 베트남 사람들이라, 한국과 베트남의 응원을 고민할 거 같았다. 그래서 베트남 국민을 베트남 말로 띵깜(정)이 넘쳐흐르는 민족이라 한다. ‘띵깜’이 넘쳐흘러 법보다 정이 우선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옛 정서와 유사한 점이 많다.

아시아게임 남자축구를 처음으로 4강 진출하게 한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오빠’라고 불리우며 인기가 하늘을 치솟는다. 심지어 박항서‘ 감독을 베트남으로 귀화해달라는 열성팬들까지 생겼다. ‘사돈의 나라’에서 이제 ‘친구의 나라, ’형제의 나라‘로 불린다. 혈연의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산이씨의 시조가 백년이상의 융숭한 전성기를 가진 베트남 리왕조란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화산이씨 종친회에서 베트남 방문했을 때, 베트남 왕족이 돌아왔다며 지도급인사들이 나와서 크게 환대 해주었다. 멸족한 줄 알았던 베트남 리왕조의 후손이 한국에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베트남 정부는 왕족의 신분에 맞는 국빈급 대우를 해주었다.

필자는 축구를 보면서 생각했다. 일본과의 경기처럼 꼭 베트남을 이겨야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가 신기했다. 이미 나도 베트남의 정 문화에 익숙해졌나 보다. 민기 엄마와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한국에서 꿈과 희망이 무엇이냐고 질문했더니 시부모님 건강하고 남편과 아이들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라 했다. 베트남 신부 민기엄마가 축구를 보면서 남편의 나라를 응원하든지 친정나라를 응원하든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비록 부부가 한 이부자리에서 축구를 보면서 동상이몽을 꿈꾼들 어떠하리. 한국이든 베트남이든 그 어느 나라가 승리한들 어떠랴. 우리는 이미 형제, 친구, 사돈의 나라이다. 세계화, 글로벌화 시대에 국가와 개인의 경계선을 넘어선 성숙한 문화와 의식의 공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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