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을 켜고
내비게이션을 켜고
  • 승인 2018.09.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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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한다. 우선순위로 정해진 최적 길을 제외한 그 나머지 경로는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시간이 다양하다. 똑같은 목적지를 가는 경우라 할지라도 접근하는 방법과 과정이 다르듯 경유지를 돌아서 갈 건지 곧장 최단기로 질러갈 건지 별도로 입력할 수도 있다. 다만 출발시간에 따라 소요시간이 길어지거나 짧아지기도 하지만 누구라도 종착역이라는 목적지는 같을 것이다 분명.

학사모를 하늘을 향해 머리위로 집어 던지는 ‘클리셰’도 책거리의 기쁨도 새로운 부화를 위해 날달걀 세례를 퍼 붓던 졸업식의 풍경은 옛말이 된 듯하다. 12일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에서 8월 청년(15~29세)실업률이 10%를 기록해 19년 만에 동월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25~29세 대졸 집단을 중심으로 청년실업률이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는 최악의 상황이다.

지난 팔월, 아들은 찌는 듯 한 폭염 속에서 여름학기 졸업(일명 코스모스 졸업)을 했다. 졸업식장의 분위기는 내가 해 온 졸업식과는 사뭇 달랐다.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진 지리한 장마철 같은, 다신 밝은 해를 볼 수 없을 것 같은 어두운 졸업식이었다, 운 좋게도 아들은 졸업을 하기 전 취업을 먼저 한 상태였다. 하지만 졸업식 내내 아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취업 못한 친구들이 취업한 친구들보다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제 속이야 즐겁고 개운하지만 겉으로 내놓고 웃을 수 없을 만큼 미안함이 더 크다고 했다.

취업한 친구들 위주로 예쁜 후배여학생들이 몰려 와 안부를 물었다. 취업을 했다하더라도 대기업인지 아닌지 수도권인지 지방인지에 따라 동행한 이들의 숫자도 가슴에 품어 안은 축하꽃다발도 다르게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참석 자체를 하지 않아 얼굴조차 대면하지 못한 친구들도 많다고 한다. 몇 컷의 사진을 남기고 졸업식장을 서둘러 빠져나오며 막다른 골목의 끝자락에 홀로 주저앉아 있을 청년들, 또한 아이의 친구들을 떠올리며 아들의 엄마에서 세상 모든 엄마들의 마음을 담아 졸작 ‘배추흰나비, 내일로를 타고’란 제목의 헌시 한 편을 띄워 보낸다.

“바나나는 길다. 긴 것은 기차, 기차는 빠르다/ 끝말 받아 부르는 우리들의 놀이는/ 다시 돌아 와 끝나지만, 그러나/ 이 시대 젊은이들을 실은 이 열차는/ 직업이라는 소실점을 향해 무한히 달려갑니다/ 정해진 궤도에 순응할수록/ 넓은 들판이 유순해집니다/ 황홀한 진입은 빠르게 또는 느리게 찾아오는 법/ 거친 호흡을 달래며 앞만 보고 달립니다/ 가끔, 청춘의 건널목 표지판을 지나치며/ 그만의 적정속도를 잇기도 했습니다/ 객차와 객차를 잇는 공간마다/ 아직 제자리 찾지 못한 애벌레들이 숨어들었나 봅니다/ 나비가 되어 찾아갈 꽃에게 안부를 떠올리며/ 막바지 봄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취업, 스펙, 사랑만이 종착역인 젊은이들 세상을 향해/ 정차와 연착을 견뎌내며 긴 터널을 지나갑니다/ 일곱 날의 시간이 지나면/ 아직 애벌레로 있는 시간들, 흰나비가 되기 위해/ ‘내일로’에 오르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왠지 거리는 좀 멀더라도 풍경이 좋은 길이나 정감 있는 경로를 택해서 집으로 향한다.

다시, 재탐색을 켠다. ‘계속하려면 사용하는 기기의 위치기능을 사용 설정하세요.’라고 뜬다. 앞 세 자리를 제외한 뒤에 오는 숫자는 전혀 같은 것이 없다. 마치 지문처럼. 벤자민 프랭클린은 ‘벤자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살아가는데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건 없다. 넌 뭐든지 될 수 있어. 꿈을 이루는 데 시간제한은 없다’고 말한다. 청년들이여 세상이 아무리 그대들을 힘겹게 하더라도 장엄한 삶의 내비게이션을 켜고 스마트하고 당당하게, 다시 일어나 꿈을 향해 나아가길 빈다. 언제나 선택은 내 몫이었다. 오늘이라는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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