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이 흥했던 대구 종로, 그 시절로 떠나볼까
요정이 흥했던 대구 종로, 그 시절로 떠나볼까
  • 황인옥
  • 승인 2018.09.1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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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스토리텔링으로 ‘풍류문화골목’ 조성한 윤금식 카페 무아 대표
대구의 마지막 요정 20여년 운영
“전통문화의 한 축이던 기생·요정
전통적 우리 풍류 지키고 싶었다”
사비로 종로에 ‘피어나길’ 조성
전시관 ‘기생·요정·홍산’ 구성
가체·장식품 등 역사 자료 공개
대구 근대골목투어와 연계 추진
21일 저녁 ‘피어나길’ 개막식
나무와건물
‘피어나길’ 중앙 마당.
전영호기자

김광석길에 이어 대구에 또 하나의 도심 재생 콘텐츠가 탄생한다. 조선의 기생문화를 골목에 접목한 대구 종로1가의 ‘피어나길’이다. 대구는 종로를 중심으로 1960년대에 130여 곳의 요정에 기생 500여명이 활동할 정도로 번창했고, 1980년대 이후 요정문화가 막을 내리기 전까지 100여년간 풍류객들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피어나길’은 대구 종로의 역사를 활용한 도심재생 프로젝트이자 요정거리였던 종로의 역사와 문화를 접목한 또 하나의 역사문화콘텐츠다.

기생
야외전시장인 ‘기생 이야기’ 전경.
전영호기자

‘피어나길’은 기생문화를 핵심콘텐츠로 만경관 맞은편 종로 골목 안쪽 990여㎡ 터에 기생문화와 현대인의 휴식공간으로 조성됐다. ‘피어나길’에는 대구 종로 기생의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관인 ‘기생 이야기’와 옛 풍류문화를 알려주는 요정전시관인 ‘의기정(義妓定)’이 스토리텔링의 중심을 잡고 있다. 의기정에는 과거 종로의 밤을 장식했던 요정 130여 곳의 미니어처와 기생들이 썼던 가체, 장식품을 전시하고, 야외 전시장인 ‘기생 이야기’에는 대구에서 촉발된 국채보상운동에 당시 큰 돈인 100원을 의연금으로 내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던 대구 기생 ‘앵무’의 이야기를 비롯해 대구 기생의 역사적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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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생문화 전시관인 ‘의기정’ 전경. 전영호기자

이와 함께 대구시민과 관광객이 여유를 즐기는 음식점, 우리고대사와 맞닿아 있다는 홍산문화를 소개하는 ‘홍산문화전시관’, 주역학의 대가 야산 이달(李達·1889-1958) 선사의 한시(漢詩)가 조각된 비석과 옛 정취를 자아내는 전통우물 등과 종 만드는 장인 원광식 선생이 재현한 신라범종 3개 중 하나를 전시해 인문학적 콘텐츠도 강화했다. 개량한복과 옛 교복을 빌려주는 테마공간은 현재 준비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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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금식 카페 무아 대표. 전영호기자
“축복 속에서 태어난 인간이 죽을 때까지도 축복되게 살려면 ‘내가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해요. 뿌리를 알아야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전통은 나를 아는 뿌리에요. 종로 골목에 ‘홍산문화’나 ‘기생문화’라는 전통문화를 입히는 이유도 뿌리와 관계되죠.”

대구의 밤을 밝혔던 요정 골목의 ‘풍류문화’를 골목콘텐츠로 되살려낸 ‘피어나길’은 지역의 대표 관광 브랜드인 대구근대골목 코스에 위치하고 있다. 대구근대골목 투어는 대표적 원도심 재생 프로젝트의 대표적인 사례로, 숨어있는 도심 속의 역사를 재조명해 관광자원화한 케이스다. 도심 골목에 문화콘텐츠를 입혀 도심 공동화를 방지하고 골목상권을 살려내며 전국적인 성공사례로 관심을 받았다. ‘피어나길’은 대구근대골목에 또 하나의 역사문화콘텐츠를 추가해 관광 활성화에 시너지 효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감을 모은다.

‘피어나길’에는 기생문화 외에도 특별한 무언가가 더 있다. 바로 개인에 의해 조성됐다는 것. 조성자는 윤금식(62) 카페 무아 대표다. “도심 재생 통한 골목상권 해법을 제시하고 싶었다”는 윤 대표는 “활기를 잃어가는 종로 상권에 활기를 불어넣고, 대구근대골목 코스에 또 하나의 콘텐츠를 심고 싶었다”며 피어나길 조성 이유를 설명했다.

“사재를 털었다”고는 하지만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뚝심과 추신력으로 기획 10여년만에 놀랄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윤 대표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사실 ‘피어나길’은 처음 계획과 달리 규모가 커졌다. 공간 조성 소식을 듣고 좋은 인연들이 더 좋은 공간으로 거듭나는데 힘을 보태 주었던 것. “처음에는 무아 주차장에 조성하려고 했는데 옆 건물 주인이 ‘내 건물을 사서 제대로 해 보라’며 건물을 기꺼이 제게 팔아 주었고, 부동산업을 하는 지인도 골목 입구 상가가 매물로 나왔다며 연결해 주었어요. 그런 배려들이 있어 지금의 규모가 될 수 있었어요.”

‘피어나길’은 ‘기생문화’라는 전통소재를 현대인들과 소통하는 공간이다. 전통과 현대의 융합하는 요소는 공간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공간 중앙 마당에 공연무대를 조성해 다양한 공연들이 상시로 올려지도록 하는 한편 청년과 예술가가 주축이 되는 바자회와 벼룩시장도 열 계획이다. 전통과 문화와 젊음과 낭만이 함께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 “궁극적으로 문화인들을 위한 공간이 될 것이에요.”

‘피어나길’ 조성의 궁극적인 목표는 관광활성화와 골목상권 활성화다. 이는 쇠퇴하는 도심에 새로운 기능을 도입하고 창출함으로써 경제적, 사회적, 물리적으로 부흥시키자는 도심재생의 취지와 맞닿아 있다. 윤 대표가 ‘피어나길’ 내에 조성한 상가에 지역 상인들을 입주시킨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종로 상권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침체가 가속화 되고 있죠. 이 골목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문화와의 접목은 필수라고 생각했고, 그 전략이 맞아떨어진다면 ‘피어나길’이 종로 골목을 살려내는 첨병이 될 겁니다.”

종로에 기생문화가 존재했었다는 것을 아는 이도 드물지만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골목문화콘텐츠로 접목해 내기는 더욱 어렵다. 그러나 윤 대표는 오랜 시간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그에게는 그럴만한 충분한 당위성이 있었다. 윤 대표야말로 요정과 기생문화의 정점에 있었던 인물이기 때문. 그는 지난 40여년을 요정 세계에 몸담으며 대구 종로 요정의 역사와 함께 했다. 윤 대표는 18세에 요정에 들어가 산전수전 다 겪은 뒤 대구의 마지막 요정인 ‘가미((加味)’를 지난 2월까지 20여년간 운영했다. 이러한 그의 인생역정 또한 기생문화 스토리텔링에 풍성함을 더하는 요소다. “무아 주차장을 기생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시키겠다는 계획은 10여년전부터 했어요. 오랫동안 요정을 하면서 우리풍류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으로서의 사명감 같은 것이 작용했다고 할까요?(웃음)”.

윤 대표의 ‘가미’는 선비나 사회지배층과 풍류를 논했던 조선시대 기생문화를 표방했다. 마담은 전통한복을 여종업원은 개량한복을 입었으며, 판소리 춘향가나 흥부전, 가야금 병창, 북장단이 어우러지는 ‘국악연주회’를 방불케 하는 전통공연이 상시로 올려졌다. 요정 곳곳에는 윤 대표의 취향이 녹아있는 고미술들로 즐비했다. “과거 요정과 기생은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역할을 했죠. 80~90대의 전통음악을 하시는 무형문화재 중에서 요정에서 기생들을 가르친 분들도 적지 않았어요. 그만큼 기생들의 예악 수준이 높았다는 반증이죠.”

전통과 현대의 만남은 그에게는 익숙한 조합이다. 그는 지난 2015년에 중구 종로2가에 신개념 코리안 디저트 카페인 ‘무아(無我)’를 오픈해 종로2가의 명물로 만들었다. 카페에 마련된 작은 무대에서 가야금과 인디밴드 연주가 울려퍼졌고, 퓨전쌈밥, 놋그릇 비빔밥 등 우리 음식을 카페식으로 접목한 메뉴로 국내외 관광객들의 미각과 청각을 사로잡았다. 또한 전통 누각을 들여놓은 건물입구, 꽃살무늬 철제 루버, 고분군 같은 내부, 단청 가득한 꽃살무늬 창호가 부착된 벽면, 한옥의 고재를 옥상으로 옮겨놓은 한옥촌 등 한국 전통 공간의 현대적 재해석도 가미해 대구근대골목 투어 코스의 백미를 자처했다. “‘피어나길’은 골목과 문화의 접목이자 전통과 현대의 융합이에요. 이미 ‘무아’에서 한 번 시도해 성공했던 일이어서 어렵지 않았어요.”

좋은 가치는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불완전에서 완전으로, 단절에서 소통으로 추동력이 된다. 현대 사회에서 대표적인 좋은 가치로 문화와 예술이 급부상하고 있다. 실생활에 문화예술을 접목하는 것을 넘어 경제분야와의 접목도 일상이 되고 있다. 바야흐로 문화와 예술이 돈이 되고, 먹거리가 되는 시대다. 윤 대표의 ‘피어나길’은 이러한 시대조류의 중심 속에 있다. “오래된 골목이 관광코스로 급부상하고 있는데, 관광객의 마음을 잡아끄는 핵심 요소로 문화콘텐츠가 각광받고 있지 않습니까? 종로1가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게 될 ‘피어나길’도 그런 콘텐츠가 될 것입니다.” ‘피어나길’ 개막식은 21일 오후 6시에 ‘피어나길’ 공간에서 열린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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