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바르다가 사랑한 10월의 하늘
[문화칼럼] 바르다가 사랑한 10월의 하늘
  • 승인 2018.09.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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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관장
한 할머니와 괴짜 청년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 로드 무비가 있다. 두 사람이 프랑스 전역을 함께 누비며 만든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런 영화는 본적이 없다, 완벽하다!’는 평을 했고, 뉴욕타임즈는 2017 최고의 영화로 선정했다. 사진기자 출신의 프랑스 여류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 Agnes Varda)와 프랑스 사진작가, 설치미술가인 JR(장 르네-Jean Rene)이 함께 제작, 출연한 작품이다. 먼저 두 사람의 이력이 예사롭지 않다. 바르다는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베를린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바 있는 현존하는 레전드 감독이다. JR은 2018 타임지 ‘영향력 있는 100인’ 선정 아티스트, 대형 사진 설치 등을 통하여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거나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소위 ‘개념 아티스트’다.

나는 프랑스 시골 풍경이나 감상해도 족하다는 생각으로 영화관을 찾았다. 큰 기대 없이 찾았다가 가슴가득 감동과 온기를 담아 나왔다. 그래 이게 예술이지 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며--. 55살 나이차이 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남다른 케미를 보여주며 놀라운 광경을 펼쳐 보인다. 새로운 물결이란 뜻의 50~60년대 프랑스 영화운동 누벨바그(Nouvelle Vague) 거장인 바르다의 따뜻한 시선과 JR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만나 얼굴은 예술이 되고, 도시는 갤러리가 되는 기적을 만든다.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마을과 사람을 찾아 나선다. JR의 포토트럭을 타고 길 위를 누비며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모습을 대형사진에 담아낸다. 철거 예정지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주민, 광부들 그리고 항만 노동자의 아내들-- 어떤 강요도 없이 그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 담는다. 허물어져 가는 폐가, 농장의 창고 그리고 공장 굴뚝과 컨테이너 더미 심지어 기차까지 바르다와 JR의 손길을 거치면 그곳은 갤러리가 된다. 그들은 자신의 대형 사진으로 인해 변화된 모습에 신기해하거나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그 속에서 자아를 찾는다.

영화를 찍기 위해 이러한 행위 예술을 하든, 아니면 그 반대이든 그것은 관계없다. 바르다와 JR의 작업으로 인해 세상이 바뀌고, 예술이 박제되어 있는 것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살아날 때 바로 그곳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TV프로그램 ‘알쓸신잡’으로 유명해진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가 트위터에 올린 ‘일년중 나머지 날은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살고 대신 딱 하루만 소외된 청소년을 위해 재능기부를 하자’는 제안으로 인해 2010년부터 시작된 과학자들의 재능기부 과학강연의 이름이 ‘10월의 하늘’이다. 과학자와 공학자, 과학 작가 등 과학과 관련 있는 재능기부자들이 한날한시(매년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전국 각지의 도서관에서 강연을 한다. 예술가나 기업인처럼 과학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도 과학과 연관이 있는 주제만 준비하면 강연을 할 수 있다. 조건은 단 둘, 자발적으로 뜻을 밝힌 사람만이 참여 할 수 있고 금전적인 도움이나 기업의 후원은 철저히 배제 하는 것이다.

10월의 하늘에는 다른 행사와는 다른, 소위 ‘10월의 하늘 스피릿’이 있다. 먼저 겉으로 드러난 주인공은 강연자인데 진짜 주인공은 행사 진행을 맡은 운영기부자와 현장 진행기부자 이다. 이들의 공은 표면적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이 행사 참여자들은 ‘10월의 하늘’의 진짜 영웅이 누구인지 다들 알고 있단다. 두 번째는 자발적인 행사인 만큼 어떻게든 행사를 즐겁게 만든다는 것이다. 청중이 즐겁게 강연에 참여 하도록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강연자와 진행자도 기쁘게 하루를 보낸다. 이들은 서로모여 즐거운 나들이 가듯 도서관으로 향하고, 가는 도중 재미난 놀이도 하며 강연이 있는 하루를 떠들썩한 축제로 승화 시킨다. 강연이 끝나면 이들을 격려하기 위한 조촐한 파티가 열린단다. 파티는 주로 서울에서 열리는데, 가까운 도시에서 강연을 마친 기부자들이 먼저와 먼 도시에서 강연한 기부자를 기다리다 함께 모여 밤늦게 까지 이야기꽃을 피운단다.

바르다와 JR 그리고 10월의 하늘의 공통점은 자신의 일을 통해 세상과 함께하고,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따뜻한 마음이 있으면 목소리 높여 외치지 않아도 자신의 말을 잘 전달할 수 있고 세상을 설득 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무덥던 여름이 어느 날 선명하게 선을 그으며 가을의 뒤로 물러섰다. 이제 가을이 무르익어간다. 아름다운 10월을 모두들 기다리고 있다. 우리도 또 다른 ‘10월의 하늘’을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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