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낙수
여행 낙수
  • 승인 2018.09.2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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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영진전문대
학교명예교수 수필
알퐁스도데,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다.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스스로 대견함을 느낀다. 문학사랑 때문일 것이다. 버스가 프랑스 남동부 프로방스에 들어오자 여행 안내자가 도데의 작품 ‘별’을 낭송하기 시작했다. 고교시절 국어책에 실린 ‘별’을 연상할 수 있는 나이임을 감지한 그녀의 노숙한 재치였다.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별 이야기를 들으면서 옛 학창시절로 돌아간다. ‘아가씨가 비탈길 아래로 사라지면서 노새 발굽에 제어 구르는 자갈 하나하나가 내 마음 속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산중의 가난한 양치기 소년이 넘나볼 수 없는 주인집 딸을 연모하는 순수한 시정이 밀물처럼 마음에 들어온다. 작가 도데는 양치기의 어깨에 머리를 대고 잠든 아가씨를 ‘별’이 내려와 앉은 것으로 묘사하면서 목가적인 고향의 분위기를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단편소설이지만 수필 냄새가 뭉클 난다. 프랑스와 이태리 관광길은 도시 간 이동에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린다. 40여 년 전 서유럽 쪽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들뜬 마음에 관광지에 대한 깊은 고려 없이 여러 나라를 돈다는 것에 그저 만족했었다. 주마간산으로 몇 나라를 돌았지만 여행후의 잔영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혼 50년을 기념하여 남프랑스·이태리 여행길에 올랐다. 젊을 때의 여행과 나이 들어 하는 여행의 묘미는 전혀 다르다. 전자를 보고 즐기는 단순관광이라 한다면 후자는 전자의 목적에 깊은 사색을 더한 느끼면서 하는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은 그 분위기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동승한 여행객과의 소통 여하는 여행 전체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디를 가도 나이 많은 축에 드는 지라 여행을 떠나기 전 행여 나이 탓에 스스로 움츠려들지 않을 까 걱정을 했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쉽게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외국여행은 대부분 모두투어이므로 여행자들의 구성형태는 가지각색이다. 그룹으로 온 사람, 부부, 홀로 여행자 등 아주 다양하다. 날이 지나면서 조금씩 익숙해 가지만 머쓱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생면부지의 사람과 마주보며 식사하는 것도 고역이다. 붙임성 있는 아내는 누구에게나 말을 걸어 서먹함을 곧잘 풀어가지만 나는 그것이 어렵다. 사회성은 나보다 아내가 고수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나이 차이가 한참 나는 두 쌍의 부부와 동석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여행을 마칠 때까지 나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좋은 시간을 만들어 간 것은 아주 다행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이해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의 유명 성당은 종교적 시늉만 낼 뿐 관광 상품화가 되고 있었다. 파란 하늘, 뭉게구름은 지중해 날씨의 표상이다. 차창 밖으로 멀리 보이는 나지막한 산 중턱 주홍빛 지붕의 마을이 그림 같다. 높은 곳에는 반드시 성당이 있다. 마을이 형성될 때 의무적으로 세워졌을 것이다. 요즘 교회당에는 교인들이 별로 없다는 말도 들었지만 오래 손질 하지 않는 곳이 많고 영화롭던 옛 교회의 권위를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로마 바티칸 박물관 관람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입장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끝이 안 보인다. 관광객의 대부분은 서양인들이다. 안내자에게 물었다. “바티칸 나라에는 누가 살고 있습니까?” 교황과 사제들만 산다고 했다. 엉뚱한 생각이 든다. 입장료가 만만치 않는데 그 많은 수입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가톨릭을 위한 선교 사업에 쓰일 것이라는 나름 생각은 하지만 국민도 없는 작은 국가인지라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바티칸은 미지의 영역인가. 동유럽과 이탈리아를 낀 바다를 아드리아 해라고 부르는데 같은 지중해를 이탈리아가 독자적으로 명명한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유럽지도를 펼쳐 나라명과 위치, 주요 도시를 일일이 체크하고 버스로 죽 달려온 여행지를 선으로 이어가면서 여행한 곳곳을 마음에 담으려고 노력해 본다. 과거에는 예사로 지나쳤던 일이다.

이번 여행의 수확은 유럽의 크고 작은 나라들, 아름다운 지명의 도시를 마음 알뜰히 재조명한 것이다. 집착력이 있는 지금의 나이 덕분이다. 가는 데만 12시간이 넘는 비행에 지치기도 했지만 기억에 남을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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