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하류(大人下流)
대인하류(大人下流)
  • 승인 2018.09.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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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노자 도덕경에 대국하류(大國下流)라는 말이 나온다. 큰 나라는 하류에 흐르는 물과 같다는 것이다. 즉, 바다와 같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가장 먼저 비는 높은 산을 적신다. 촉촉이 비로 젖으면 산은 생명을 얻는다. 비를 맞은 산은 물을 땅 속에 품기도 하고, 일부는 그대로 지면으로 흘려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물이 처음 흐르는 모습은 아주 작은 도랑과 같다. 그 물들이 이곳저곳에서 모여 큰 도랑이 되고, 나아가 제법 큰 계곡을 형성한다. 때론 폭포가 되어 흐르고 때론 굽이쳐 흐르는 강물이 된다. 그렇게 구비 구비 흐르던 물은 가장 낮은 곳 바다로 모두 모인다. 약속이라도 한 듯, 가장 낮은 곳에 세상 모든 물들이 모이는 것이다. 바다는 모든 것을 품으며 지형적으로는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해 있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대국상류(大國上流)가 아니라 대국하류(大國下流)라고 한 것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크다. 큰 나라가 높은 곳에 앉아 뽐내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나라 아래에 있어 작은 나라를 품어주고 작은 나라에 생명을 불어 넣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대국은 그런 의무가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대인하류(大人下流)하여야 한다. 큰 사람은 낮은 곳에 있어, 작은 것을 품는 사람이어야 한다. 작은 것들과 사사로이 맞서거나 경쟁하지 않고 품을 줄 아는 사람이다. 대인은 하류여야 한다. 상류로 치고 오르려는 사람은 사실 소인(小人)이다. 그들이 아래에 있고 작은 사람이기에 높은 자리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작은 사람들은 늘 위쪽의 세상을 동경한다. 그들이 찾는 사람도 높은 사람이고, 흔히 잘 나간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큰 사람은 이미 자신이 큰 사람이기에 낮은 곳으로 눈길이 간다. 늘 낮은 자리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잡으려 한다. 가난하고, 외롭고, 힘이 약한 사람들을 품어준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다. 예수가 그랬고, 석가모니가 그랬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다. 그날 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났다. <“평양 시민에 인사 문재인, 전단 100억장보다 더 효과”-세계일보> <문재인 90도 인사가 갖는 의미 ‘국민이 나라의 주인’-전자신문> <북한TV에 비친 문재인 대통령..90도 인사 부각-YTN> <북한 주민들에 ‘90도 인사’ 한 문재인 대통령-한국일보> 많은 평양 시민이 나와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시민들을 향해 취한 행동은 허리 숙여 인사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시민들은 적잖이 당황했다고 뉴스는 전하고 있다. 충분히 그럴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인사라는 것은 서로의 자리에 따라서 달라지는 법이다. 보통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고, 또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것은 높은 사람을 존경하는 뜻에서 낮은 사람이 하는 인사법이다. 그런데 최고의 지도자가 낮은 자리에 있는 자신들을 향해서 허리 숙여 인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사의 제목 중 필자가 마음에 든 것은 <“평양 시민에 인사 문재인, 전단 100억장보다 더 효과”-세계일보> 이것이었다. 북한의 시민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북쪽을 향해 확성기를 크게 틀고, 수많은 돈을 들여서 전단지를 만들어 띄우는 행위보다 대통령이 보여준 인사 한 번이 그들에게 더 큰 울림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것을.

예수는 제자의 발을 씻김으로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보였다. 섬김을 받으려하는 사람은 먼저 남을 섬겨야 한다. 어른이 어린아이를 섬겨야 하고, 회사의 사장이 직원을 섬겨야 한다. 힘을 가진 사람이 힘이 없는 사람을 섬겨야 하고, 대통령과 지도자가 국민을 섬겨야 한다. 대인하류(大人下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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