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불안의 시대’를 넘어
[문화칼럼] ‘불안의 시대’를 넘어
  • 승인 2018.10.0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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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관장
올해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탄생 10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처에서 그를 기리는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번스타인은 지휘자로서 카라얀과 함께 한 시대를 이끌었다. 또한 뛰어난 피아니스트, TV를 활용한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의 영역을 최초로 개척한 달변가. 그리고 ‘지휘하는 작곡가’를 꿈꿨던 번스타인답게 작곡가로서도 위대했다. 다재다능했던 그는 오히려 ‘작곡가들은 나를 진정한 작곡가로 여기지 않고, 지휘자들 역시 그러하다. 심지어 피아니스트조차 나를 피아니스트로 인정하지 않는다’며 한탄을 했다 한다. 이는 분야 각각마다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다른 분야는 오히려 빛이 바래보이는, 일종의 착시현상 이라고 본다.

그는 오페라, 오페레타 그리고 발레음악과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비롯한 다수의 뮤지컬. 그 외 많은 기악곡을 썼다. 3개의 교향곡도 남겼는데 이 중에서 올해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의 교향곡 2번에 대한 이야기다. 이 작품은 당시 암울했던 시대와 깊은 관련이 있다.

번스타인은 한 그림과 시에서 깊은 인상을 받아 2번 교향곡 ‘불안의 시대’(1949)를 썼다. 20세기 미국인 삶의 단면을 무심하고 무표정한 방식으로 그림으로써 인간 내면의 고독과 상실감, 단절을 표현했다는 평을 받는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 호퍼(E. Hopper)의 ‘밤의 사람들’(1942). 번스타인은 두 대의 클라리넷으로 조용하고 우울하게 시작하는 2번 교향곡의 프롤로그는 이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영국의 대표적 시인 오든(W.H.Auden)역시 ‘밤의 사람들’에서 영감을 받아, 전쟁의 암울한 시간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을 그린 장편 시‘불안의 시대’(1947)를 썼다고 한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4명의 생각과 행동을 추정하고 또한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상상의 세계를 탐구, 묘사한 시인의 동명작품 구성 그대로 번스타인은 음악을 만들어 냈다.

번스타인은 70년대 중반 지메르만(K.Zimerman)이 국제적 명성을 얻기 직전부터 이 젊은 피아니스트와 인연을 맺고 많은 연주와 녹음을 함께 해나갔다. 2번 교향곡도 지메르만과 함께했던 번스타인은 그 에게 ‘내가 100살이 되거든 다시 한 번 이 곡을 연주하자’고 말했다 한다. 번스타인은 세상을 떠났고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8년 지메르만은 세계 각처에서 번스타인이 아닌 다른 지휘자들과 함께 그의 작품을 연주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도 10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이 작품을 연주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일본 도쿄 산토리 홀에서 지난 9월 24일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와 함께 번스타인의 2번 교향곡 ‘불안의 시대’를 연주했다.

환갑을 맞은 나는 가족과 함께 도쿄 여행을 가게 되었고 딸에게서 이 음악회 티켓을 선물 받았다. 나로서도 생소한 레퍼토리의 음악회를 고가의 관람료를 지불하고 본다는 것이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여행 틈틈이 미리 듣고 공부한 이 작품에서 나는 큰 감명을 받게 되었다. 컴퓨터 화면이지만 호퍼의 그림에 나타난 4명의 표정에서 몸과 마음이 유리된 듯한, 희망이 없는 현실의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느낄 수 있었다. 번스타인 역시 그의 음악과 인생에 존재한 모순과 균열의 아픔이 있었고, 당시 시대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런 번스타인 또한 ‘불안의 시대’를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음을 음악을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연주는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래틀이 지휘하는 LSO의 다이나믹의 변화는 현란했으며 지메르만은 번쩍이는 여유가 넘쳤다. 1부 일곱 시기와 일곱 무대를 표현하는 피아노는 그야말로 ‘확실’했다. 2부 가면극의 재즈풍 연주는 역시 ‘피아니스트의 피아니스트’답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래틀과 지메르만 그리고 LSO는 1부의 주선율로 풀어나가는 에필로그의 장엄하고 희망 가득한 선율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연주해 어둠의 시대에서 환희의 세상으로 나가고자 하는 번스타인의 의지를 감동적으로 표현했다.

흔히들 40에 불혹(不惑), 50에 지천명(知天命) 그리고 60에 이순(耳順)이라 말하는데 나는 이순의 나이에도 지천명은커녕 불혹을 입에 올리기에도 부끄러운 사람이다. 여행길에 만나게 된 음악회는 우연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무언가가 이순의 나이에도 아직 불안 덩어리인 나 자신을 돌아보게 이끈 것 같다는 생각이다. 여기엔 ‘불안의 시대’라는 음악이 너무나 효과적이고 강렬한 수단이었다. 번스타인의 음악과 지메르만의 명료한 피아노 그리고 래틀이 빚어내는 LSO의 사운드는 한참이나 내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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