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영어 말하기 대회와 한미동맹 이야기
한국어·영어 말하기 대회와 한미동맹 이야기
  • 승인 2018.10.0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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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덕주
제갈덕주
경북대 한국어문화원 책임연구원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한글날은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과 더불어 한국의 5대 국경일 가운데 하나이다.

한글날은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가 제정한 ‘가갸날’에서 출발하였는데, 한때 국경일과 공휴일에서 빠졌다가 최근 다시 재지정되었다. 일제는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폈으며, 이에 대항하여 조선어학회(한글학회 전신)와 신민회 등이 힘을 합쳐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한글 창제를 기념하는 가갸날을 제정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문화체육관광부 및 국립국어원 그리고 한글학회 등이 중심이 되어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매년 한글날이 다가오면 각지에서 다양한 경축식과 문화행사가 진행되는데, 필자는 지난 10월 3일 개천절에 매우 이색적인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올해로 18회째를 맞는 ‘한국어·영어 말하기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게 된 것이 그것이다. 이 행사는 미8군한국군지원단 대구지역대대(대장 정현웅)가 주최하는 행사로서 미군 장병들의 한국어 말하기 대회 및 K-POP 경연대회 그리고 지역 청소년들의 영어 말하기 대회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2016년 국립국어원의 국어문화학교를 통해 카츄사 대상 병영 언어예절 특강으로 대구지역대대와 인연을 맺게 된 필자는 올해로 3년째 이 행사의 심사를 맡고 있다.

처음 이 행사에 참여했을 때만 하여도 한글학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 말하기 대회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나 3년 동안 심사를 맡으면서 이 행사가 단순히 언어능력을 뽐내는 경연대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대회는 한국문화와 미국문화가 소통하는 축제의 장이었으며, 한미 동맹의 끈끈함을 재확인하는 우호 증진의 자리였다. 이번 행사에는 미8군한국군지원단 대구지역대대 정현웅 대장과 대구기지사령부 로버트 피 맨 사령관을 포함하여 주한미군 및 카츄사 장병, 지역 청소년과 학부모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카츄사들을 통해 한국어를 익힌 미군 장병과 미군 장병들을 통해 영어를 배운 한국 청소년들이 함께 모여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깊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어쩌면 지금까지 주한미군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이 다소 경직되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작부터 선글라스와 함께 춤을 추며 등장한 정현웅 대장은 여느 군대의 지휘관들과는 달리 매우 유쾌한 분위기로 인사말을 건냈다. 로버트 피 맨 사령관 또한 우렁차고 간결한 인사말로 화답하며 대회가 시작되었다. 경직된 한국사회의 의전문화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었지만 가식적이라고 보이지 않았다. 함께 참석한 장병들의 활기찬 분위기가 진솔한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었으며, 이것은 필자에게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다. 대회는 2시간 반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한국인 심사위원과 미국인 심사위원이 각각 모국어 심사를 맡아 진행되었다.

한국어 말하기 대회 심사를 맡은 필자는 미군 장병들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노련한 제스처와 함께 자신의 고향인 뉴욕을 소개하는 장병이 있었는가 하면, 자신의 이름으로 익살스러운 삼행시를 짓는 미군도 있었다. 한편 아직 한국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어가 유창하지는 못하지만 한국문화에 대해 느낀 점을 토로하던 병사의 이야기는 매우 가슴에 와 닿았다. 훈련을 마치고 평생 처음으로 파병된 곳이 한국이었던 그는 한국으로 오는 동안 미지의 세계인 한국에 무척 걱정과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도착 후 경험한 한국은 매우 친절하며 활발한 분위기의 선진국이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K-POP 경연대회에 참여한 장병들의 노래솜씨가 웬만한 한국가수들 못지않아 흥이 절로 나기도 했다.

외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우리 청소년들이 보여준 기량도 기대 이상이었다. 주한미군이 지역사회를 위해 외국어 교육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이 이색적이었고, 미래의 주역이 될 지역 청소년들이 자신의 꿈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한미 동맹과 같은 어려운 주제로 유창하게 발표하는 모습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오는 2019년은 임시정부 수립 및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기미독립선언서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천명한 민족자결주의 원칙은 국권을 상실한 우리 민족에게 큰 희망의 불씨가 되었다. 그 이면에는 타국의 언어를 먼저 배우고자 다가섰던 미국의 외교정책과 언어정책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 덕분에 지금 영어는 오히려 세계인들이 배우고자 하는 국제통용어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말하기 대회는 단순한 경연대회가 아니라 혈맹의 강건함과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는 매우 뜻 깊은 행사라고 보여 진다.

아쉽게도 이런 좋은 행사가 지역사회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워 이 지면을 통해 느낀 바를 간략히 소개하였다. 기회가 된다면 오는 대구광역시의 100주년 기념식에서도 이와 같은 행사가 추진되기를 기대해 본다. 남북이 평화모드로 들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 있어서 어쩌면 진정한 평화로 나가가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한미 동맹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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