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새 집으로 이사가다
엄마, 새 집으로 이사가다
  • 승인 2018.10.0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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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주부)



꿈을 꾸었다. 엄마와 함께 살던 집이었다. 흑백이었다. 마당은 비어 있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하고 불렀지만 엄마는 없었다. 장면이 바뀌었다. 수돗가에 갔다. 수도 고무호스를 한 손으로 붙잡고 머리를 숙였다. 머리에 물이 흘렀다. 머리가 아팠다. 가슴이 꽉 막혔다. 엄마가 이 집에 없다는 섬칫한 느낌이 떠올랐다. 생시같은 느낌이었다. 엉엉 울다가 잠이 깼다.

금요일 아침이었다. 홍희는 출근하는 남편에게 오늘 퇴근하고 엄마한테 가서 자고 오겠다고 말했다. 꿈자리가 나쁘다고 했다. 느닷없는 통보에 남편은 어리둥절해하더니 알아서하라며 꿈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다. 결의에 찬 홍희의 태도에 못 가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나 보다. 주부가 없어도 밥만 있으면 되는 집이었다. 홍희는 자신 대신에 먹을 거리를 준비해두고 금요일 오후 엄마에게 가는 버스를 탔다.

느티나무가 두 팔을 벌리고 반기는 마을 입구에 다다랐다. 동네 못이 어린시절에는 추억을 만들어 주었고, 지금도 엄마의 젖가슴같은 푸근함을 주었다. 홍희는 조심스레 마당에 들어섰다. 불이 켜져 있었다. 부엌문이 열려있었고 신발이 놓여 있었다. 엄마가 등을 돌리고 밥상에 앉아 달그락달그락 숟가락질 소리를 냈다. 엄마~하고 불렀다. 엄마는 밥숟가락을 놓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화들짝 놀라며 요란스레 반가움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엄마의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번졌다.

다음날 새벽6시, 엄마는 밥을 먹자고 깨웠다. 아직 잠이 덜 깬 홍희다. 토요일은 느즈막히 일어나던 홍희다. 엄마 혼자 밥먹으라며 밥을 차려 드리니 혼자는 안 먹는다고 화난 표정을 짓는다. 어린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는 것 같다. 새벽밥을 엄마와 같이 먹었다.

엄마는 밥을 먹고나서는 아무일도 안 하면 심심하다며 마당에 세워둔 참깨를 멍석에 깔고 털었다. 홍희는 자고 싶었지만 엄마혼자 일하라고 두고서는 발뻗고 잘 수가 없어서 거들었다. 막대기로 탈탈탈 터는 엄마의 몸짓은 신명이 난다. 80이 넘어 치매가 있어도 농사일은 몸에 달라붙어 저절로 되나보다. 누가 엄마를 보고 치매라고 할까 싶을 정도로 능수능란한 솜씨다.

오후 잠시 휴식을 취하자고 엄마목욕을 시켜드리고 같이 한숨 잠을 청했다. 옆에 누웠던 엄마가 일어나 밖을 나가더니 홍희가 떠날 시간이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회관에 마실이라도 갔나하고 어른들께 간식비라도 드리려고 주머니에 돈을 넣어갔다. 엄마는 없었다. 어른들은 밭에 갔다고 했다. 밭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뭐하러 갔나 싶어 얼른 갔다. 엄마는 뙤약볕에 쭈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고 있었다.

혼자서 반찬을 잘 챙겨먹지 않고, 회관에 가서 노는 것보다 집안 농작물을 정리하고, 빈 밭에 가서 잡초를 뽑는 것이 낙인 엄마. 혼자 있는 것보다는 보살펴주는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낫겠다는 큰오빠의 판단을 따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그 다음주 엄마는 새집으로 이사를 갔다. 꿈에 엄마가 없어서 울었던 것이 예지몽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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