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비우고 우두커니…바쁜 일상에 ‘쉼표’
생각 비우고 우두커니…바쁜 일상에 ‘쉼표’
  • 한지연
  • 승인 2018.10.1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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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멍 때리기 대회’ 스케치
시민 투표·심박 수 등 통해 평가
70명 참여 90분간 ‘무념무상’
죄수·마법사 등 이색 분장도
2018대구멍때리기대회
지난 13일 대구 수성구 대구스타디움 서편 광장에서 열린 ‘2018 대구 멍 때리기 대회’에서 한 아이가 매트에 엎드린 자세로 멍 때리기 대회에 참여하고 있다. 전영호기자

“죄명 죄수생으로 33일의 수능(13일 기준)형벌 기간이 남아 있음. 특이사항으로는 수능특강만 보면 ‘멍을 때린다’는 것.”

13일 오후 2시께 열린 ‘2018 대구 멍 때리기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강채원(여·20·대구 달성군 다사읍)씨. 그가 차고 있던 ‘칼(죄인을 가둘 때 썼던 형구의 하나)’에는 스스로를 ‘죄수생’이라고 칭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에 대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

재수학원을 다니고 있는 강씨는 “경쟁과 바쁜 일상 속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멍을 때릴 수 있어 새로웠다”이라며 “가끔은 이렇게 뇌에 휴식을 주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말했다.

이날 대구 스타디움 서편 광장에서는 70명의 시민들이 허공을 바라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멍 때리기 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초점을 잃은 눈에 살짝 벌어진 입술 등을 하고 90여 분의 시간을 보냈다.

직장인 김명훈(43·대구 중구)씨는 “요즘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사회인들이 많다. 새로운 정보를 놓치면 안 될 것 같다는 강박 때문”이라며 “멍을 때린다는 것은 뇌가 너무 많은 활동을 했다는 뜻이다. 이번 대회는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사회를 방증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대회가 중반쯤에 이르자 선수 기록 향상을 위한 서비스 이용이 속출했다.

대회 스태프들은 참가자가 파란 카드를 들면 음료를, 노랑 카드를 들면 그늘막을 제공했다.

서비스 이용에도 불구하고 멍을 때리기 쉽지 않다며 기권하는 시민들이 발생했다.

첫 번째 기권 탈락자 김형섭(27·경북 김천시 교동)씨는 “입대를 두 달 앞두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 참석하게 됐다”며 “안정감이 들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만히 앉아있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1인 미디어채널 홍보나 SNS 게재 등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대회에 참석한 이들도 있었다. ‘인스타에 올리려고’, ‘관종이라서 사진 찍으려고’, ‘유튜브 채널 홍보’ 등 참가사유를 밝힌 시민들은 특이한 옷차림을 하고 시선 끌기에 나섰다.

‘2018 대구 멍 때리기 대회’는 대구 정신건강축제 행사 중 하나로 ‘바쁜 현대인들의 지친 정신을 쉬게 하자’는 축제 주제와 일치해 개막하게 됐다. 서울·경기 외 지역에서 대회가 열린 것은 대전에 이어 대구가 두 번째다. 기발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사람에게 부과되는 예술점수(시민투표)와 안정적인 심박 수 그래프를 보인 사람에게 부과되는 기술점수로 평가가 이뤄졌다.

멍 때리기 대회는 행위예술가 웁쓰양이 기획해 2014년 10월 27일 서울시청 앞 서울 광장에서 처음 열렸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시간 낭비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참여형 행위극이다.

한지연기자 jiyeon6@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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